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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혜사터 십삼층석탑
회재 이언적이 머물렀던 독락당 부근에 정혜사터가 있고, 그곳에는 아주
색다른 모습의 탑이 있습니다. 정혜사터 십삼층석탑입니다.
탑의 모습은 우리나라 석탑 가운데 거의 유일하다고
할 만큼 독특합니다. 어찌 보면 고깔모자를 쓴 듯한 그 모습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어떻게 이런 모양의 탑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요? 누구는
망덕사터 목탑을 축소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음~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 1층 지붕돌
먼저 1층
지붕돌에 눈길이 갑니다. 흥미로운 게 한둘이 아닙니다.
탑의 지붕돌 윗면과 아랫면이 별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윗면은 8매의 돌로,
아랫면은 4매의 돌로 조립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결구 방식은 고선사터 삼층석탑이나 감은사터 삼층석탑에서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윗면의 돌의 개수가 두 탑보다는 좀 더 많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이런 양식은 오래된 양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붕돌 낙수면도 흥미롭습니다.
합각선에서 두툼한 우동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는 귀신사 삼층석탑과 담양 남산리
오층석탑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라 석탑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형태입니다. 이것은 어디의 영향을 받았을까요? 백제의 영향을 받았을까요?
- 1층 지붕돌의 절수구
처마 아래를 살펴보다 그 끝 언저리에 절수구를 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습니다. 몇 번 보았는데도 놓쳤습니다. 언제쯤 탑의 모든 것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요?
- 1층 몸돌
탑의 중심을 든든히 잡아주는 1층 몸돌은 2단의 별석 받침 위에 놓여
있습니다.
네 귀퉁이에 큼직한 돌기둥을 모서리기둥으로 삼았고, 그 안에 양측으로 다시 보조기둥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 위로
인방(引枋)을 걸쳤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사이는 감실이 되었습니다. 4면이 모두 같습니다.
- 탑신부
2층 이상의
탑신부는 지붕돌과 그 위층의 몸돌이 하나의 돌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층 탑신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간략화되고, 축소되었습니다. 그래서
2층부터 13층까지의 탑신부는 탑신부가 아니라 마치 상륜부처럼 느껴집니다.
- 정혜사터
십삼층석탑
<동경통지>에 "신라 제37대 선덕왕(宣德王) 원년(780년)에 당의 첨의사 백우경이 참소를
입어 이곳 자옥산 아래에 우거하게 되었다. 그는 경치가 뛰어난 터를 골라서 영월당과 만세암을 세웠는데, 선덕왕도 행차한 바가 있다. 후에 이것을
고쳐 절을 마련했는데, 곧 정혜사라 한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따라서 정혜사는 780년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탑은 언제
만들어졌을까요?
지붕돌의 층급받침이 3단이라는 점을 들어 800년대 이후에 탑이 조성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를 800년대 이전으로 조금 더
올려잡아도 될 것 같습니다. 정혜사가 세워졌을 그 당시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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