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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산 문호장사당
영산향교를
지나 골짜기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영명사란 절이 있습니다. 이 절의 바로 아래쪽 개울 건너에 작은 전각이 있습니다. 문호장사당입니다.
문호장(文戶長)은 조선시대에
살았던 초인적인 인물로, 영산에선 수호신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이 사당은 일종의 산령각으로 되어 있습니다. 원래 있던 사당이 1930년에 화재로 소실되자
1933년에 영축산 밑에 중건하였습니다. 지금의 건물은 1995년에 창녕군 지원으로 재중건한 것입니다. 문호장사당은 이곳 외에 영산시장 내와
영산면 죽사리에도 있습니다.
- 문호장사당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집입니다.
정면에 '문성황각(文城隍閣)'이란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이것은
문호장을 모신 성황각이란 뜻이지요. 사당 안에는 호랑이를 타고 있는 문호장의 영정과 목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이 목상은 사당 뒤에 서 있던
나무를 베었을 때 그 안에서 나온 것이라고 전합니다.
- 목상
그러면 문호장은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호장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조선시대 고을 아전
가운데 가장 윗자리의 벼슬을 말합니다. 그는 조선시대에 영산에 살았다고 합니다. 당시 관에 억눌린 백성들의 한을
대변한 영웅이었습니다. 무인이 아니면서도 말을 잘 타고 활과 검술에 능했으며, 초인적인 신통력을 갖고 있어 도술과
축지법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 목상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그는 만년에 영산현
인산껄에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해 여름날 관찰사가 영산현의 사정을 살피기 위해 이곳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마침 모내기 철이라 길가에
농부들의 점심참이 놓여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관찰사의 말이 그만 그 점심참을 밟아버렸습니다. 그 순간 말의 발굽이 땅에 딱 붙어
버렸습니다. 관찰사는 채찍을 휘둘러 말이 움직이려
했으나 말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관찰사는 하는 수 없이 말에서 내려 영접차 마중 나온 현감에게 이 괴이한 일에 대해
말했습니다. 이 근방에
문호장이란 사람이 살고 있어 말을 타고 지나갈 때 간혹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문호장은 산기슭 나무그늘 밑에서
짚신을 삼고 있었는데, 관찰사의 말이
농부들의 점심참을 밟고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에 도술을 부려 발의 발굽이 땅에 들어 붙게 하였습니다.
관찰사는
노하여 문호장을 잡아들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잡혀 온 문호장은 안색도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쌀농사는 지어서 나라님 섬기고, 부처님 봉양하고, 산 부모
봉양하며, 만백성이 양식하는 것이온데, 그 농군들의 점심밥을 짓밟아서야 될 일입니까?" 문호장의 말에 감찰사도 주춤했지만,
더욱
모질게 다스렸습니다. 곤장을 치면 볼기에 닿기도 전에 곤장이
부러졌고, 뻘겋게 단 부젓가락으로 지지면 얼음과 같이
식어버렸습니다. 그러자 놀란 관찰사는 그를
옥에 가두었으나, 또 다른 문호장이 태연히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문호장은 스스로 천명이 다한 것을 깨닫고 관찰사에게
"소인에게는 남자 소생이 없으니
죽은 뒤에 해마다 관가에서 오월 단오에 제사를 지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청하고는, 사람을 시켜 밀짚대 하나를 가져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관찰사에게 밀짚대로 자신의
겨드랑이를 세 번 치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 이후로 해마다 단오에 마을 사람들은 문호장을 기리고 마을과 가정의 안녕을 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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