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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룡사원에서 내려다본 포항 시내의 모습
경주에서
포항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형산(兄山)이 있습니다. 형산강이란 이름도 이 산 이름에서 나왔습니다. 형산강을 사이에 두고 북쪽에 제산(弟山)이 마주 보고 있는데, 형산과 제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습니다.
옛날 형산과 제산은 형제산으로, 서로 붙어 있었습니다. 이 당시 남천, 북천, 기계천의 물이 안강
일대에 모여 호수를 이루었습니다. 이 호수가 자주 범람하여 경주까지 피해를 줬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경순왕의 아들 태자 김충이 용이 되어
꼬리로 형제산을 내리쳐서 형산과 제산으로 갈라지게 되었고, 그 틈으로 안강호수의 물이 강을 이루어 영일만으로 흘러들어 가 지금의 형산강이
되었다고 합니다.
형산 정상에 왕룡사원이라는 절이 있습니다. 절은 신라시대에는 형산사, 그 이후에는 옥련사,
그리고 왕룡사였으나, 지금은 왕룡사원이라 합니다. 절까지는 국당마을에서 북쪽으로 난 산길을 한참 올라가야 합니다. 이곳에 서면, 형산강과 포항 시내, 그리고 동해의 푸른 바다가 한눈에 다 내려다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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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문화원에 전시된 문무인상 사진
왕룡사원을 찾은 것은 경주문화원에 전시된 사진
한 장 때문입니다. 이 사진은 문무인상(文武人像)의 모습을 담은 것인데, 언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제강점기 때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곳에 전하는 이야기로는, 이 문무인상은
과거에는 나무로 만든 것이 아니고 동으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형산 아래의 유씨 문중에서 자기네 조상을 모셔놓은 사당 위쪽
산에 이 신상을 모셔놓았고 하여 산 아래 형산강으로 굴러서 던져 버렸습니다. 그 이후에 지금의 목신상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때가 대략 200년
전이라고 합니다.
- 경주 왕룡사 목조
문무인상
문무인상은
지금 왕룡사원의 왕장군용왕전(王將軍龍王殿)에 모셔져
있습니다.
크기는 약 1.2m 정도로, 누구를
나타낸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왕설래합니다. 이곳에 전하는 이야기로는 경순왕과 태자 김충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절 측에서는 무열왕과 김유신
장군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주문화원에 전시된 사진에는 왕룡사 문무왕 목신상으로 적혀
있습니다.
- 문인상
문무인상은 얼굴이 전체 길이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며, 신장은 매우 짧습니다. 둘 다 오른손은 옷 속에 감추고 왼손만 밖으로
드러내어 놓았습니다.
문인상은 큰 관모를 쓰고 있으며, 왼손으로 턱수염을 잡고 있습니다. 푸른색 옷에 얼굴은 살 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 무인상
무인상은 투구를 쓰고 있으며, 투구 위에는 삼지창(三枝槍)이 꽂혀
있습니다. 왼손에 무엇을 받쳐 든 것 같은데,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푸른색 옷에 얼굴은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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