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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광사터로 가는 숲길

간의 흐름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습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옵니다. 그리고 겨울이 가면 다시 봄이 찾아옵니다. 우리 또한 나고, 자라고, 그리고 늙어 죽습니다.

삶과 죽음, 태어남과 사라짐, 대비되는 이 둘은 대체 무엇인가요?
터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이러한 이 두 명제를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은 포항 신광면에 있는 법광사터(法光寺址)를 찾아갑니다.

- 단풍이 물든 나무

이제 계절은 가을의 막바지에 다다랐습니다. 노랗고 빨갛게 물든 나뭇잎은 바람이 불지 않아도 스스로 땅에 떨어져 쌓입니다. 늦은 오후 햇빛은 이미 그 힘을 잃었습니다.


- 삼층석탑

법광사터로 향한 숲길을 걷다 보면, 먼저 담장으로 둘러싸인 탑과 비를 만나게 됩니다.

그늘진 탑은 오후 햇빛으로 군데군데 환하게 빛납니다. 예전의 어색했던 모습을 벗고 이제는 제모습을 되찾았습니다. 3층으로 올려진 이 탑은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세워졌습니다. 그 당시 석탑이 그렇듯이 이 탑 또한 평범하지만 단아한 모습을 잃지 않았습니다. 절제된 아름다움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 석가불사리탑비의 지붕돌(위쪽: 2013년 11월, 아래쪽: 2007년 1월)

석탑 바로 옆에 비가 있습니다.
석가불사리탑비입니다.

이 비는 조선 영조 26년(1750년)에 세워졌습니다. 비에는
석탑의 중수 내력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눈길이 저절로 비의 머릿돌에 갑니다. 오늘따라 이끼가 끼어 그런지, 그늘이 져서 그런지, 그곳 문양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이곳에는
양쪽 끝 아래쪽에 국화꽃 무늬가 새겨져 있고, 그 사이에 붕어인지 잉어인지 물고기 한 마리가 새겨져 있습니다. 보이나요? 잘 보이질 않는다고요? 그러면 2007년 1월에 찍은 사진을 보시죠.

- 불대좌

법광사는 신라 진평왕 때 세워진 그의 원당사찰(願堂寺刹)입니다. 창건 당시에는 갖가지 보배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왕궁보다도 사치스러웠으며, 불국사와 맞먹는 규모와 수준을 자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시의 화려함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당시의 화려하고 당당했을 절의 모습을
그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금당터의 불대좌입니다.

그렇지만 불대좌마저도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불상이 없어진 것은 그렇다고 치고, 모서리가 많이 깨어진 상대석은 뒤집힌 채 옆에 놓여 있습니다. 단지 하대석과 중대석만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았습니다. 이처럼 비록 깨어지고 무너졌지만, 지금도 이 불대좌를 마주하면 엄청난 힘과 무게가 느껴집니다.

- 쌍귀부

절터 뒤쪽 한 단 높은 언덕에 쌍귀부가 있습니다.

이 쌍귀부도 몸돌과 머릿돌을 잃어버렸습니다. 형태는 두 마리 거북이 등을 붙이고 나란히 엎드린 모양인데, 이마저도 온전치 못하고 머리를 포함하여 몸 전체가 많이 깨졌습니다. 등에 새겨진 귀갑무늬도 거의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희미해졌습니다.

- 쌍귀부

쌍귀부 쪽에서 앞을 바라보면, 불대좌가 있는 금당터가 바로 바라보입니다.

이런 곳에 있는 비의 원래 모습은 어땠을까요? 지금은 무참히 깨어져 그 형태조차 알아보기 어렵지만, 당시 얼마나 대단했을지 상상이 되나요?

- 쌍귀부 주위

늦은 오후의 마지막 남은 햇살이 노랗게 물든 이곳 은행나무를 환하게 비춥니다. 햇살을 받은 은행잎은 더욱 노랗게 빛납니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이 햇살이 사라지고 나면, 은행잎의 그 빛깔도 함께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 당간지주

이제껏 왔던 길을 되돌아갑니다. 절터로 오르는 막바지 길 왼편에 있는 당간지주로 향합니다.

당간지주의 아랫부분은 땅속에 묻혀 있고, 윗부분만 땅 위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노출된 윗부분은 바깥면으로 활 모양을 그리며 흘러내리다가 1단의 굴곡을 이루었고, 그 안쪽에는 네모진 간구가 있습니다. 지금 볼 수 있는 것은 이것이 다입니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요? 이것만으로도 좋습니다.

지난번에 왔을 때엔 이곳이 논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무슨 작업을 하는지 땅을 온통 뒤집어 놓았습니다. 당간지주 바로 옆에 흙무더기가 잔뜩 쌓여 있습니다.
금 법광사터의 신세를 보는 것 같습니다.
어쩌겠어요…. 이것도 다 자연의 섭리인가 봅니다.

날이 저물어갑니다. 그림자가 길게 땅에 드러눕습니다. 이제 늦은 오후 햇살만을 남겨 두고 법광사터를 떠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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