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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안계리 석조 석가여래좌상
양동마을 동쪽 산너머에 안계저수지라고 하는 커다란 저수지가 있습니다. 포항제철을 비롯한
철강공단과 포항시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저수지입니다. 지금은 물속에 잠겼지만,
예전에 이곳은 승방골이란 곳이었습니다. 그 옛날에는 스님들이 공부하며 지냈을
곳이지요.
이 저수지 상류에 사골마을이란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저수지 쪽에서 이곳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길가에
석불이 하나
있는데, 마을 이름은 이 석불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곳에 절이
있었다고 하여 '절골'이라고 부르다가 한자로 표기하면서 '사곡(寺谷)'으로 되었고, 그것이 다시 '사골'로 바뀐 것이라고 하니까요.
이곳에 있는
석불을 안계리 석조 석가여래좌상이라 합니다. 8~9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입니다. 지금은 주위가 도로와 논밭으로 변해 이곳이 절터였다는
사실을 실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이곳의 지형을 보다 보면 절터로 그만한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안계리 석조
석가여래좌상
석불은 군데군데 깨어져 있지만, 그런대로 온전한
편입니다.
깨어진 머리 부분의 머리카락은 나선형인 소발(螺髮)을 하고 있고, 얼굴은 양옆이 납작하고 통통하며, 눈썹 사이에는 백호(白毫)가 있습니다.
법의는 우견편단(右肩扁袒)으로, 오른쪽 어깨가
드러나 있습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고, 어깨는 당당하고 허리는 잘록하여 크고 넓은 무릎과 잘 어울립니다.
다른 석불들처럼 이 석불도
눈과 코의 마모가 심합니다. 이것은 석불의 코를 갈아먹으면 아들을 낳는다거나
눈을 갈아먹으면 눈병이 낫는다는 민간 속설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고통받는 중생을 위해서라면 어디 눈과 코뿐이겠습니까? 팔과 다리도
아낌없이 내어줄 부처님이지만 그래도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은 안타깝습니다.
- 항마촉지인과 결가부좌
두 다리는 결가부좌(結跏趺坐)하였고, 수인(手印)은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오도록 하여
무릎에 얹고 오른손은 땅을 향해 내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
석불이 석가여래상임을 말합니다.
석불을 보면 신체 일부가 그을려
있고, 오른쪽 팔과 다리 부분에 금이 가 있습니다. 이것은 2004년 8월
2일에 발생한 화재 때 생긴 것이라고 합니다.
- 불대좌
불대좌는 전체적으로
팔각형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대석에는 안상무늬와 복련(覆蓮)이 새겨져 있고, 상대석에는 앙련(仰蓮)이 새겨져 있는데 3중으로 되어 있습니다. 중대석은 복원
때 새로 보충해 넣은 것입니다.
- 뒷모습
뒤로 돌아와 석불을 바라보니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의 모양이 뚜렷합니다. 또한,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법의 자락도 시원스럽습니다.
1999년 이 절터에서
'안계사(安溪寺)'란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었습니다. 따라서 이곳에 있었던 절이 안계사(安溪寺)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석불은 2002년과 2003년에 걸쳐 있었던 2차례 발굴 조사를
마친 후 복원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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