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문화유산

여름날 창녕 광산서당

sky_lover_ 2024. 9. 1. 07:03

- 광산서당

 

창녕군 유어면의 남쪽 지역에 광산리(光山里)가 있습니다.

광산(光山)은 400여 년 된 마을입니다. 광정(光頂)이라고도 했는데, '빛뫼'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앞산 꼬장뱅이산(光頂山)이 꽃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화존(花存)에서 '꽃(花)'이 '광(光)'으로 음차되어 광존(光存)이라고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이곳 이름이 광정(光頂)이나 광존(光存)에서 광산(光山)으로 변했다 하겠습니다.

 

이곳 대동 마을 이강(梨岡)에 광산서당(光山書堂)이 있습니다.

 

- 광산서당

 

광산서당의 전신은 광산서원(光山書院)입니다.


광산서원은 정조 19년(
1795년)에 어촌(漁村) 양훤(楊晅, 1597∼1650)을 향사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고종 5년(1868년)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서원이 훼철된 뒤 광무 3년(1899년)에 양훤의 후손들이 서원 유허지에 제단을 설립하고, 서원 근처 이강(梨岡) 아래에 광산서당(光山書堂)을 세웠습니다.

양훤은 동계(桐溪) 정온(鄭蘊)의 문인입니다. 성균관 유생 시절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하고 스승이 화를 당하자 낙향하여 은거하였습니다. 인조 때 태학사(太學士)를 지냈고,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이 포위되자 의병을 일으킨 뒤 다시 낙향하여 종신토록 은거하였습니다.

 

- 광산서당

 

광산서당은 서당 건물로서는 흔하지 않은 'ㄱ' 자형 구조를 하였습니다. 정면 5칸에 동쪽을 'ㄱ' 자로 잇대어 누(樓)를 만들었습니다.

 

- 광산서당

 

건물 정면의 좌측 2칸은 재(齋)로, 가운데 2칸은 강당(講堂)으로 구성하였고, '광산서당(光山書堂)'이라는 편액을 걸었습니다.

 

- 광산서당

 

우측의 누는 2칸으로 분리하여, 당호를 '춘성루(春成樓)'라 하였습니다.

 

- 광산서당

 

광산서당 건물 앞에 배롱나무가 있습니다.

 

- 배롱나무

 

여름날 배롱나무에 분홍색 꽃이 피었습니다.

 

- 배롱나무

 

배롱나무 밑동은 만만치 않은 나무 나이를 보여줍니다.

 

- 배롱나무

 

이번에는 조금 늦게 광산서당을 찾아온 것 같습니다. 배롱나무꽃이 절정을 지났습니다.

 

- 광산서당

 

이번 여름은 유난히 길고 무덥습니다. 광산서당에서 잠시 더위를 식혀 봅니다.

 

(2024.8.18.)

«   2024/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