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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시칠리아 여행 7: 팔레르모

sky_lover_ 2024. 4. 27. 06:26

- 포르타 누오바

 

팔레르모는 기원전 8세기에 건설된 도시입니다. 그리고 시칠리아 주도(州都)입니다.

 

처음에는 페니키아의 식민 도시였고, 그 후 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9세기 아랍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번창하기 시작하였고, 12세기 시칠리아 왕국이 성립된 후 그 수도로 더욱 발전하여 유럽의 중요한 문화중심지 중 한 곳이 되었습니다.

 

- 포르타 누오바

 

포르타 누오바(Porta Nuova)는 팔레르모의 기념비적인 성문입니다. 

 

포르타 누오바는 '새로운 문'이라는 뜻입니다. 1535년에 카를 5세(Carolus V)가 팔레르모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1569년에 세워졌습니다.

 

- 부조상

 

포르타 누오바 앞면에 거대한 아랍인 부조상이 있습니다.

 

- 부조상

 

부조상에 새겨진 사람은 무어인(Moor)이라고 합니다. 무어인은 이슬람계 사람으로, 이베리아반도와 북아프리카에 살았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 노르만 궁전

 

포르타 누오바 옆에 노르만 궁전(Palazzo dei Normanni)이 있습니다.

 

- 노르만 궁전

 

노르만 궁전은 팔레르모 왕궁이라고도 합니다.

 

노르만 궁전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왕실 거주지로, 시칠리아 왕국 왕들이 지냈던 곳입니다. 이곳은 시칠리아 왕국 통치자들의 사적 거주지였습니다. 

 

이 궁전은 11세기에 아랍인에 의해 포에니 요새 터에 세워졌습니다. 12세기에 궁전이 확장되었고, 시칠리아 왕 루제루 2세(Roger II)의 왕궁이 되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건물로 변경된 시기는 16~17세기입니다. 

 

- 팔레르모 대성당

 

팔레르모는 234년간(827~1061년) 아랍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1072년에 아랍 왕조를 멸하고 노르만 왕조가 시칠리아에 들어서면서 아랍의 지배에서 벗어났습니다. 

 

팔레르모 대성당은 팔레르모의 대표적 건축물입니다. 대성당이 있는 이곳도 모스크가 있었던 곳입니다.

 

- 팔레르모 대성당

 

팔레르모 대성당은 승천한 동정녀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성당입니다.

 

팔레르모 대성당은 팔레르모 대주교의 명에 의해 1179~1185년에 세워졌고, 그 후 약 600년에 걸쳐 개축되었습니다. 원래는 노르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나, 그 후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건축 양식이 혼합되었습니다.

 

- 종탑

 

대성당 종탑입니다.

 

- 대성당 정면

 

대성당 정면입니다.

 

- 성모와 아기 예수 모자이크 상

 

대성당 출입문 위에 금박 모자이크로 되어 있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상이 있습니다.

 

- 부조상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상 아래에 자그마한 인물상이 있습니다. 이 인물상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시칠리아 왕 루제루 2세의 아들 윌리엄 1세(William I)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확실치는 않습니다.

 

인물상 밑에 머리가 둘인 쌍두 독수리(double-headed eagle) 문장이 있습니다.

 

독수리는 '하늘의 왕'으로 여겨져 힘을 상징합니다. 서양의 지배 가문들은 독수리를 자신의 권력과 힘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하였습니다. 특히 쌍두 독수리는 청동기 시대에 유래한 상징으로, 제국의 개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상징성은 후기 비잔틴 제국에서의 사용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습니다.

 

- 내부

 

성당 내부는 18세기에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장엄하면서 숭고한 아름다움을 갖추었습니다.

 

- 중앙 제단

 

중앙 제단은 엄함과 숭고함으로 가득합니다.

 

- 볼로니 광장

 

팔레르모 대성당에서 콰트로 칸티로 가는 도중에 볼로니 광장(Piazza Bologni)이 있습니다.

 

이 광장은 1500년대 중반부터 있었으며, 한때 귀족들과 상인들이 지냈던 궁전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광장에는 1500년대 초 시칠리아를 통치하였던 황제 카를 5세(Carolus V)의 동상이 있습니다.

 

- 콰트로 칸티

 

볼로니 광장에 조금 가면 1600년에 건축된 둥근 바로크식 광장인 콰트로 칸티(Quattro Canti)가 있습니다.

 

이곳은 팔레르모의 두 주요 거리인 마케다 거리(Via Maqueda)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거리(Corso Vittorio Emanuele)가 서로 교차하는 곳입니다.

 

광장의 네 방향에는 각각 분수와 시칠리아를 다스렸던 스페인 통치자의 조각상, 여성 수호성인의 조각상이 있습니다.

 

- 분수 조각상

 

콰트로 칸티 남서쪽 면에 있는 분수 조각상입니다. 이 분수 조각상은 봄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 프레토리아 분수

 

콰트로 칸티에서 한 블록 남쪽으로 내려가면 프레토리아 광장(Piazza Pretoria)이 있습니다. 이곳에 프레토리아 분수(Fontana Pretoria)가 있습니다.

 

이 분수는 원래 1544년에 토스카나 지역의 조각가 프란체스코 카밀리아니(Francesco Camilliani)에 의해 피렌체에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1574년에 팔레르모에서 매입하여 이곳에 세워졌고, 1581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이 분수의 조각상은 모두 나체입니다. 그래서 한때 이 분수를 '수치심의 분수(the fountain of shame)'라고 하였습니다.

 

- 산 카탈도 교회

 

프레토리아 광장에서 다시 한 블록 남쪽으로 내려가면 벨리니 광장(Piazza Bellini)이 있습니다.

 

이곳에 이색적인 형태의 예배당이 있습니다. 산 카탈도 교회(Chiesa di San Cataldo)입니다. 이 예배당은 1160년경에 아랍 노르만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3개의 붉은 돔이 눈길을 끕니다.

 

- 산타 마리아 델람미랄리오 교회

 

산 카탈도 교회 옆에 산타 마리아 델람미라글리오 교회(Chiesa Santa Maria dell'Ammiraglio)가 있습니다.

 

이 교회는 1151년 이전에 세워졌습니다. 교회 이름에서 '암미라글리오(Ammiraglio)'는 해군 제독이라는 뜻으로, 시리아 기독교인으로 해군 제독이자 시칠리아 왕 루제루 2세의 수석 장관이었던 안티오크의 조지(George of Antioch)가 교회의 설립을 후원한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교회에는 오스만 제국의 박해를 받아 15세기부터 알바니아와 발칸 반도에서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로 피신한 알바니아 망명자들에 의한 동양의 종교적 예술적 영향이 남아 있습니다.

 

- 산타 카테리나 달레산드리아 교회

 

산타 마리아 델람미랄리오 교회 맞은편에 산타 카테리나 달레산드리아 교회(Chiesa di Santa Caterina d'Alessandria)가 있습니다.

 

이 교회는 바로크 양식의 교회입니다. 1311년 수녀원으로 처음 세워졌고, 1580~1596년에 다시 지어졌습니다. 건물의 출입구로 이용되는 정면 외벽 부분은 후기 르네상스 양식이며, 이중의 계단과 출입문 위 중앙에 성녀 카테리나 조각상이 있습니다.

 

- 부조상

 

벨리니 광장 한쪽 벽면에 자그마한 부조상이 있습니다.

 

부조상에는 손에 물동이를 든 남자와 밀대 같은 도구를 든 여인, 그리고 머리에 물동이를 인 소녀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부조상은 무엇을 표현한 것일까 생각하다 시간에 쫓겨 이곳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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