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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 고법리 박익 벽화묘
우리나라에선 벽화가 그려진 무덤은 아주 드뭅니다. 그런데 밀양에 벽화가 그려진 무덤이 있습니다. 그것도 조선시대 초에 조성된 무덤에서 말입니다.
이
무덤은 경남 밀양시 청도면 고법리에 있는 밀성 박씨 묘역의 능선 경사면에 있습니다. 고려시대 말의 문신인 송은(松隱) 박익(朴翊)의
묘입니다.
- 무덤 앞을 지키고 선 문인석
박익(朴翊, 1332~1398)은 밀양 부북면 삽포리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태시(太始), 호는 송은(松隱),
시호는 충숙(忠肅), 본관은 밀성(密城)입니다.
그는 고려 공민왕 때 벼슬에 올라 사재소감(司宰少監)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왜구와 여진 등을 토벌하는 무공을
세우기도 하였으며,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와도 친했습니다. 고려가 망하려 하자 벼슬을 버렸고, 조선 태조가 다섯 차례나 불렀으나 고려 왕조로 향한 절개를 지키며 끝내 응하지
않았습니다.
- 박익
벽화묘
이 무덤은 세종 2년(1420년)에 조성되었습니다. 봉분의 크기는 가로
6.5m, 세로 4.8m, 높이 2.3m이며, 고려식 방형묘입니다. 이런 방형묘는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까지 일정 계층에서 유행했던 묘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 박익
벽화묘
이 무덤에서 벽화가 발견된 계기가 된
것은 사오마이 태풍입니다.
2000년 9월 사오마이 태풍이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간 뒤 봉분이 내려앉았습니다. 이를 보수하는
과정에서 채색 벽화가 발견되었습니다. 벽화에는 인물,
말, 도구 등의 생활풍속도와 함께 양쪽 가장자리에 대나무와 매화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꿋꿋이 잘 견디는 고고한 기상을 기려 소나무와 대나무, 그리고 눈 속에 피는 매화를
'세한삼우'(歲寒三友)라고 합니다. 이것은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합니다. 비록
소나무 그림은 없지만, 이 무덤에 그려진
대나무와 매화 그림은 박익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 내려다본 박익 벽화묘
고려가 망하게 되자 박익은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포은 정몽주에게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습니다.
지난날의 일들을 듣고 보니 聞見先天事
영화롭던 이름이 세간의 욕이 되고 있구려 榮名辱世間
마음속 깊은 생각을 말할 것 없이
莫言心內事
일찍이 산으로 돌아감만 같지 못하리 不似早還山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이곳에 서서 앞을 바라봅니다. 고법리 일대의 모습이 한눈에 다 들어옵니다. 반듯반듯한 논과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의 모습은
한적하면서도 평화롭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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