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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벽루
합천 대야성 남쪽 황강 강가에 아름다운 누각 함벽루(涵碧樓)가 있습니다. 함벽루(涵碧樓)... 푸름에 젖은 누각이라... 얼마나 멋진 누각 이름인가요?
- 함벽루
함벽루는 가야산, 해인사, 홍류동계곡, 황계폭포, 매화산(梅花山)(남산제일봉), 황매산 모산재, 합천호와 백리벚꽃길과 함께 합천 8경의 하나입니다.
<합천군읍지>와 <함벽루지>에 의하면, 이 누각은 1321년(충숙왕 8년)에 처음 세웠는데 누가 세웠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 후 1467년(세조 3년)에 군수 유륜(柳綸), 1681년(숙종 7년)에 군수 조지항(趙持恒), 1871년(고종 8년)에 군수 조진익(趙鎭翼) 등에 의해 거듭 보수되고 새로 세워졌다고 합니다.
- 함벽루
함벽루 모습입니다. 건물 측면에 '함벽루(涵碧樓)'라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 각자
함벽루 주위 바위에 많은 각자(刻字)가 있습니다. 그중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 1689)의 각자가 두드러집니다. 이 각자는 큰 글자로 '함벽루(涵碧樓)'라 쓰고, 작은 글자로 다음과 같이 덧붙여 썼습니다.
朝鮮國崇禎後辛酉郡守豊壤趙持恒重建而復值始剏(조선국숭정후신유군수풍양조지항중건이복치시창)
歲甲之回又有木鐵漂至之異事蹟具載敍記云(세갑지회우유목철표지지이사적구재서기운)
尤庵書(우암서)
각자 내용 중에 숭정후 신유년(崇禎後辛酉年)에 군수 조지항이 함벽루를 중건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숭정후 신유년은 숙종 7년(1681년)입니다. 이 각자는 우암 송시열이 나이 75세 이후에 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각자에 나무와 모래쇠가 떠내려와 강가에 쌓인 이상한 일도 썼습니다.
- 함벽루에서 바라본 전경
함벽루에서 바라본 전경입니다.
- 함벽루
함벽루에 대한 기문은 여섯 편이 전합니다. 안진(安震), 강희맹(姜希孟), 송시열(宋時烈), 조지항(趙持恒), 이채(李采), 이상학(李相學)의 기문입니다.
안진은 함벽루에 대하여 '한 채의 누각이 처마와 기둥이 날며 춤추고, 단청과 그림이 눈부시고 빛나서 봉황새가 반쯤 공중으로 날아가는 듯하다'고 하면서 누각 자체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묘사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상학은 지붕 처마 낙숫물이 바로 강물에 떨어지는 것을 특기하면서 날아가는 듯한 누선(樓船)이 포구에 정박한 것 같다며 강과 누각의 기묘한 조화에 대하여 묘사하였습니다.
강희맹은 강담수(姜淡搜)의 말을 빌려 함벽루 주위의 경치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습니다.
함벽루가 군청의 남쪽 4리쯤 되는 곳에 있는데, 절벽을 등지고 맑은 내에 다다라 남쪽으로 바라보며 뭇 산이 푸른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서쪽 바위 곁에 옛 절이 있어 새벽 종소리와 저녁 북소리가 은은하게 구름 밖에서 들려온다. 누각 동쪽 삼십 보쯤 되는 곳에 통행하는 네거리와 강을 건너는 나루가 있어서 나그네의 왕래하는 모습과 옷을 걷고 물 건너는 사람들을 굽어보노라면, 구불구불한 모양이 마치 개미 떼가 개밋둑으로 기어가는 것 같다.
- 송시열 기문
송시열은 그의 기문에서 함벽루는 조물주의 힘으로 자연스럽게 세워진 것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지난 장마에 큰 나무 몇 그루가 상류에서 떠내려와서 강언덕에 걸렸으니 들보와 기둥을 할만하였고, 모래쇠가 강가에 쌓여 못을 만들만하였다고 썼습니다.
이채는 함벽루 곁에 있는 연호사에 대해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누각 서쪽 바위 모퉁이에 난야(蘭若)의 옛터가 있으니, 세상에 전하길 연호사라고 한다. 다시 남은 재목(材木)과 힘으로 아울러 창건하니 옛터가 기울고 좁아서 돌을 파고 땅을 넓혀 함벽루 곁으로 약간 옮겼다.
- 함벽루
함벽루를 중심으로 주위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동쪽으로는 달을 먼저 바라볼 수 있다고 해서 망월암(望月巖), 뒤쪽으로는 그 모습이 피리를 부는 형상이라 하여 취적봉(吹笛峰), 그 위쪽으로는 바람을 타고 허공을 능가한다고 해서 능허대(凌虛臺), 연호사를 지나 서쪽으로는 소동파의 '적벽부'에서 그 이름을 따서 망미대(望美臺)라 하였습니다.
이러한 함벽루에 오른 시인들이 감흥이 없을 수 없었습니다. 함벽루에서 시를 남긴 사람은 많았지만, 현재 게판(揭板)되어 있는 사람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이오(鄭以吾), 표근석(表根碩), 이황(李滉), 조식(曺植), 조준(趙俊), 권시경(權時經), 김시영(金始英), 조진익(趙鎭翼), 조두순(趙斗淳), 민치순(閔致純), 이범직(李範稷), 허사렴(許士廉), 이중하(李重夏), 김영헌(金永憲), 김대형(金大馨), 문경종(文璟種), 최익현(崔益鉉), 송병선(宋秉璿) 등입니다.
- 함벽루
남명 조식 선생은 함벽루에 올라 다음과 같은 오언시(五言詩)를 남겼습니다.
涵碧樓(함벽루) - 曺植(조식)
喪非南郭子(상비남곽자) / 남곽자처럼 무아지경에 이르지 못해도
江水渺無知(강수묘무지) / 강은 흘러 아득하니 끝을 알 수 없구나.
欲學浮雲事(욕학부운사) / 떠도는 구름의 일을 배우고자 하나
高風猶破之(고풍유파지) / 높다란 바람이 와 흩어버리네.
남명 조식 선생에게 함벽루는 어지러운 세태를 잊게 해주는 곳이었을 것입니다. 남명 조식 선생은 현실을 벗어나 자유로운 정신을 추구하였지만, 끝없이 불의와 마주해야 하는 어지러운 세태에 처해 있었습니다. 어지러운 세태에서 초월자의 경지를 꿈꾸던 한 선비의 모습을 위의 오언시에서 그려볼 수 있습니다.
* 사족(蛇足)
남명 조식 선생의 시 '함벽루'에 나오는 남곽자(南郭子)는 <장자(莊子)>에 나오는 남곽자기(南郭子綦)를 말합니다. 남곽자기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남곽자기(南郭子綦)가 책상에 기대고 앉아 하늘을 우러러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멍청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짝을 잃어버린 듯하였다. 안성자유(顔成子游)가 그 앞에서 모시고 섰다가 물었다.
"어찌 된 일입니까? 얼굴은 진정 마른나무와 같으며, 마음은 진정 죽은 재와 같습니까? 지금 책상에 기대고 있는 분은 예전에 책상에 기대고 있던 그분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자기가 말했다.
"언(偃)아! 네 질문이 훌륭하구나. 이제 나는 나를 잃었는데, 너는 알겠느냐? 너는 사람의 음악은 들었으나 땅의 음악은 듣지 못했을 것이며, 비록 땅의 음악은 들었다 하더라도 저 하늘의 음악은 듣지 못했을 것이다."
"무슨 말씀인지요?"
자유가 묻자, 자기가 대답했다.
"대개 이 땅덩이가 뿜어 올리는 기운을 일컬어 바람이라고 한다. 이것이 일지 않으면 몰라도 한 번 일기만 하면 온갖 구멍들이 성을 내어 부르짖는다. 너는 그 윙윙하고 멀리서 불어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느냐? 우뚝 솟은 산림의 백 아름드리 큰 나무에는 콧구멍 같기도 하고, 입 같기도 하고, 귓구멍 같기도 하고, 목 긴 술병 같기도 하고, 술잔 같기도 하고, 절구통 같기도 하고, 연못 같기도 하고, 웅덩이 같기도 한 구멍이 있다. 바람이 불면 그것들은 부딪치는 소리와 윙윙거리는 소리, 질책하는 듯한 소리, 절규하는 듯한 소리, 흐느끼는 듯한 소리, 재잘거리며 속삭이듯 내는 소리, 애절한 소리 등등의 소리가 난다. 앞소리를 부르면 뒷소리가 화답한다. 작은 바람에는 작게 화답하고, 큰바람에는 크게 화답한다. 그러다가 바람이 한 번 지나간 뒤에는 그 구멍들은 텅 비어 고요해진다. 그때 너는 그 나무들이 살랑살랑 흔들리는 모습을 보지 못했느냐?"
자유가 또 물었다.
"땅의 음악은 온갖 구멍에서 나오는 소리요, 사람의 음악은 피리에서 나오는 소리인 줄 알겠습니다. 그러면 하늘의 음악이란 무엇입니까?"
자기가 말했다.
"불어대는 바람 소리는 수만 가지로 같지 않으니, 각자 자신의 구멍에서 나오는 소리이다. 모두가 스스로 소리를 낸다고 하지만, 그 구멍들이 성난 소리를 내게 하는 자, 그는 누구일까?"
* 정우락 교수의 '남명문학 현장답사기-함벽루'에서 일부 내용을 가져왔습니다.
(2023.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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