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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솔암 마애불
선운사 도솔암 하면 누구나 도솔암 마애불을 떠올립니다. 그만큼 이 마애불은 알 수 없는 힘으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 도솔암 마애불
전설에 의하면, 도솔암 마애불은 백제 위덕왕이 검단선사에게 부탁하여 암벽에 새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닐 것입니다. 마애불의 조성 시기가 고려 초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 도솔암 마애불
마애불의 머리 부분은 비교적 깊게 새겨졌으나, 어깨와 허리를 거쳐 내려오면서는 점차 깊이가 얕아져서 팔꿈치 아래부터는 선각으로 되어 있습니다.
명치께에 네모진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불경과 시주자의 이름 등을 적어 넣고 돌 뚜껑을 닫은 후 백회로 봉합한 감실일 것입니다.
- 부분
마애불은 각이 진 얼굴에 우뚝한 코, 도드라지게 표현된 눈은 양 끝이 올라가 있고, 입 또한 양 귀를 눌러 꾹 다물고 있습니다. 커다란 귀는 늘어져 어깨에 닿았고, 짧은 목에 삼도가 가늘게 있습니다.
표정은 원만함보다는 위압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마애불은 분명 미소를 띠고 있을 것인데, 그렇다면 상당히 파격적인 미소입니다.
- 부분
예전에 마애불 위 암벽 꼭대기에 '동불암'(東佛庵)이란 공중누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불암 마애불'로 불리기도 합니다.
공중누각은 인조 20년(1648년)에 무너져 내렸다고 합니다. 지금 마애불 머리 위에 뚫린 네모진 구멍들과 드문드문 끼어 있는 부러진 목재, 쇠못 등이 그 흔적이라고 합니다.
- 부분
마애불은 사각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습니다. 결가부좌한 두 발과 무릎 위로 올려놓은 두 손이 유난히 큽니다.
- 도솔암 마애불
도솔암 마애불과 관련해서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이야기는 마애불의 비기(秘記)에 관한 것입니다. 동학(東學) 지도자 손화중(孫華仲)의 선운사 도솔암 마애석불 비기 탈취사건(禪雲寺磨崖石佛秘記奪取事件)이 그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배경에는 당시 조선 왕조의 봉건적 질서가 해이해지면서 곧 조선이 망할 것이라는 소문과 함께 개벽을 꿈꾸는 백성들의 바람에 부응하여 동학이라는 새로운 사상이 꿈틀거리고 있는 사회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여기에다 위압적이고 매서워 보이는 마애불의 표정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도솔암 마애불은 당시 이곳 백성들의 신앙 중심이었습니다. 마애불 정중앙에 배꼽처럼 보이는 돌출부가 있는데, 이곳에 비기가 들어 있으며, 이 비기를 꺼내면 천지가 개벽한다는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이것이 세상에 나오는 날에 한양이 멸망하고, 거기에 벼락도 함께 들어있어 누구든 손을 대는 사람은 벼락을 맞아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손화중이 이 비기를 끄집어냈다는 것입니다. 임진년(1892년) 8월 무장(茂長) 대접주(大接主) 손화중이 교도들을 동원해 청죽 수백 개와 마른 동아줄 수천 발로 비계를 만든 다음 석불의 배꼽을 도끼로 깨부수고 그 속의 비기를 꺼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이후 손화중의 접(接)에만 수만 명의 새로운 교도가 몰려드니 이것이 바로 동학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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