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황동 푸조나무 가야시대 바닷가였을 봉황동 오래된 주택지 옆에 패총유적지가 있습니다. 조개껍질 더미 위에 잔디를 심은 너른 언덕이 만들어져 있고, 언덕 끝자락에 노거수 푸조나무가 있습니다. 봉황동 푸조나무입니다. - 봉황동 푸조나무 봉황동(鳳凰洞)은 김해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곳입니다.이곳 지명은 1870년 김해부사로 부임한 정현석(鄭顯奭)이 이 일대가 봉황이 날개를 단 것과 같다고 하여 봉황대(鳳凰臺)라고 불렀다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이전에는 가야를 뜻하는 가라대(伽羅臺), 바다를 바라다볼 수 있다고 하여 망해대(望海臺), '출여의 낭자의 설화'에서 유래된 여의현(如意峴) 등으로 불리어 왔습니다. - 봉황동 푸조나무 '출여의 낭자의 설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락국 겸지왕 때 황정승과..
- 용2리 마을 대구시 달성군 유가읍 용리 용2리(솔골) 마을은 대구테그노폴리스에 인접해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이전에는 논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농지가 대구테크노폴리스에 편입되어, 지금은 콩과 참깨 등의 밭농사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 용리 푸조나무 마을 옆에 밭자락이 있습니다. 그 뒤쪽에 노거수 한 그루가 있습니다. - 용리 푸조나무 노거수는 용리 푸조나무입니다. - 용리 푸조나무 용리 푸조나무 모습입니다. - 용리 푸조나무 푸조나무 옆에는 작은 골짜기가 있습니다. 푸조나무는 마을을 내려다보며 수호신 역할을 하는 듯합니다. - 용리 푸조나무 이 마을에서 전하는 이야기로는 이 푸조나무는 200여 년 전 마을에 살던 밀양 박씨가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가지고 온 나무를 심은 것이라고 합니다..
1. 삼덕리 보호수 1) 삼덕리 느티나무1 - 삼덕리 느티나무1 고성군 회화면 삼덕리(三德里)는 월계(月溪), 남진(藍津), 신천(新川), 치명(雉鳴) 마을로 되어 있습니다. 월계(月溪) 마을은 남계(藍溪)라 하다가 냉천산 물이 마을 입구까지 흘러들어 시냇물에 비친 십오야(十五夜) 달빛이 너무도 아름다워 명월(明月)과 계수(溪水)의 시를 읊는다고 하여 월계동(月溪洞)이라 부르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월계 마을에 보호수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습니다. 두 느티나무는 동서로 250m쯤 떨어져 있습니다. - 삼덕리 느티나무1 보호수 느티나무 한 그루는 마을 앞 함안수석원 옆 도롯가에 있습니다. 수령: 약 250년. 높이: 20m. 소재지: 고성군 회화면 삼덕리 1391-6. 2) 삼덕리 느티나무2 - ..
- 곡강정 밀양시 초동면 검암리 낙동강 강가에 곡강정(曲江亭)이 있습니다. 이 정자는 중종반정(中宗反正, 1506년)에 가담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이 된 성산군(星山君) 이식(李軾, ?~?)의 유업이 깃든 정자입니다. 이식(李軾)은 벽진(碧珍: 성주 지역의 옛 지명) 사람으로, 자(字)는 자담(子膽), 호(號)는 동파(東坡)입니다. 그는 무과에 급제하여 사복시부정(司僕寺副正), 만도첨사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그는 중종반정 이후 권신(權臣)들이 중종의 비(妃) 신씨(愼氏)를 폐출하자 정쟁(政爭)을 피해 사패지(賜牌地: 임금이 큰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려준 땅)인 이곳으로 내려와 주변의 절경과 풍치를 벗 삼으며 유유자적하는 삶을 누렸습니다. - 곡강정 이식(李軾)의 아들 판관공(判官公) 이덕창(李德昌)은 상..
- 명법동 푸조나무 김해 장유(長有)와 김해평야 사이에 해발 90m 남짓한 나지막한 산이 있습니다. 칠산(七山)입니다. 칠산(七山)이라는 이름은 산봉우리가 일곱 개 솟아있다고 해서 칠봉산(七峰山)이라고 한 데서 왔다고 합니다. 칠산의 서쪽 기슭에 명법동(明法洞)이 있습니다. 이곳 명법1동 마을회관 앞 칠산 언덕 비탈에 노거수 한 그루가 있습니다. - 명법동 푸조나무 노거수는 푸조나무입니다. - 명법동 푸조나무 나무 밑동입니다. 비탈에 뿌리를 내린 나무 모습이 조금 위태로워 보이기도 합니다. - 명법동 푸조나무 그러나 나무는 쓰러지지 않고 꿋꿋하게 잘 버티고 있습니다. - 명법동 푸조나무 나무는 비탈에서 오랜 세월을 버텨왔습니다. 나무를 다시 한번 바라봅니다. 수령: 270년. 높이: 18m. 가슴높이 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