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산재 창녕 계상리(桂上里)는 고암면(高岩面)의 동북부에 있습니다. 이곳은 본래 월미면 지역으로, 1789년에 발간된 에는 갈동(葛洞), 제팔촌(梯八村)으로 나옵니다. 갈동은 칡이 많은 골짜기란 뜻의 '칡골'로 불린 것이 갈동(葛洞)으로 되었습니다. 갈동은 토평천 북쪽 방골재 아래에 있어 교통이 불편하여 사람들이 들 가운데 있는 마을로 옮겨갔고, 나머지 사람들도 근래까지 살다가 면 소재지인 중대로 옮겨가서 마을이 없어졌습니다. 계상리의 본동은 계팔(桂八)입니다. 8개의 봉우리를 뜻하는 제팔(梯八)이라 불리다가 발음이 좋지 않아 1870년경에 8개의 봉우리가 8명의 대과 급제자를 배출하리라는 설에 따라 계팔(桂八)로 변경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계상리(桂上里)로 바뀌었습니다. 계상리는 옛날..
- 직금 마을 의령군 봉수면(鳳樹面)의 동쪽 지역에 서득리(西得里)가 있습니다. 서득리에는 상암평(上巖坪), 하암평(下巖坪), 삼거리, 직금 등 네 마을이 있습니다. 서득리는 예전에 '짠디말(짠대말이)'이라 하였습니다. 짠디말은 조선시대 역참제도가 운영될 때 이곳에 역참이 있어서 말을 기르기 위한 널찍한 짠디(잔디 사투리) 풀밭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입니다. 상암평과 하암평을 예전에는 '웃덤들'과 '아랫덤들'이라 하였습니다. 마을 옆의 큰 바위(덤) 때문에 '덤들'이라 하였고, '덤'을 한자로 표현하면 암평(巖坪)입니다. '서득(西得)'이란 지명 유래는 알려진 바 없지만, 에 '서득례촌(西得禮村)'이 나타납니다. 이것을 통해 '서득(西得)'은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이전부터 써 왔던 ..
- 제내리 팽나무 경주시 외동읍(外東邑) 제내리(堤內里)는 돌매, 토상촌(吐上村), 석동(石洞)이라고 부르다가, 마을 앞의 토성계(土城谿)에 돌매못을 막은 후부터 '못안'이라 불렀고, 일제강점기 때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못안'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제내(堤內)'라 하였다고 합니다. 제내리에 제내1리와 제내2리가 있습니다. 제내1리는 돌매못 서쪽의 못안과 한밭이고, 제내2리는 사일입니다. 사일은 옛날 이곳에 선비가 숨어 있었다 하여 사일(士逸)이라 하다가 약 80년 전부터 사일(沙日)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 당집과 팽나무 제내2리 사일 마을은 중소 공장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래도 마을 서쪽에는 넓지는 않지만, 들판이 있습니다. 그곳에 당집이 있습니다. - 제내리 팽나무 당집 뒤쪽에 노거수 팽나..
- 전화리 팽나무 의령군 낙서면(洛西面) 전화리(全火里)에 방계(芳溪), 오운(五雲), 부곡(釜谷) 마을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부곡(釜谷)은 오운(五雲)의 서남쪽에 있으며, 전래 지명이 '가말'입니다. 이곳은 소재지(방계)에서 5리 남짓한 곳에 있으며, 낙동강 물이 저만치 바라보이는 작은 마을입니다. 부곡(釜谷)은 오운(五雲)마을을 지나 큰골산 너머 깊숙이 들어앉아 있는데, 마을 뒷산에 잘록한 고개가 있습니다. 이 고개가 '까막꼬'로 신반, 유곡 쪽으로 통하는 산길입니다. '가말'이란 마을 이름도 이 고개에서 유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편 '가말'이 '까마귀골, 까막골, 가막골(가막실)' 등으로 변형(變形)이 생기자, 까마귀가 흉조라는 의식 때문에 '가말'을 '부곡'으로 바꾸었다고 알려져 있습..
- 팽나무에서 바라본 구장동 마을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位良里)는 화악산(華嶽山) 줄기를 등에 업고, 동으로 옥교산(玉轎山), 동남으로 차일봉(遮日峯), 남으로 병산(屛山, 兵山), 서쪽으로 나지막한 구릉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곳 위양지(位良池)는 안동 권씨(安東權氏) 일문의 완재정(宛在亭)과 못가의 오래된 나무들로 풍광이 빼어나서 많은 사람이 찾습니다. 위양지 서북쪽에 구장동(九壯洞)이 있습니다. 구장동은 장차 이곳에서 9명의 장사(壯士)가 나와서 나라와 겨레를 위해 큰일을 해낼 것이라는 희망적인 예언이 전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이 지사(地師: 풍수설에 따라 집터나 묏자리 따위의 좋고 나쁨을 가려내는 사람)로부터 이 말을 듣고 매우 놀라 지맥을 절단한 곳이라고 합니다.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