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상사 수철화상 능가보월탑비 실상사 수철화상 능가보월탑 바로 곁에 탑비 하나가 서 있습니다. 실상사 수철화상 능가보월탑비(實相寺 秀澈和尙 楞伽寶月塔碑)입니다. 이 탑비는 비신은 푸른 돌로 되어 있고, 비머리(螭首)와 받침돌(臺石)은 화강암입니다. 비문에는 수철화상의 출생에서 입적, 그리고 부도를 세운 경위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철화상(秀澈和尙)은 실상사에서 입적하였으나, 원래는 심원사의 스님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비문에는 '深源寺□國師秀澈和尙(심원사□국사수철화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 수철화상 능가보월탑비 이 탑비는 통일신라시대 말기에 세운 것으로 여겨지는데, 본래의 탑비는 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의 비문은 조선 숙종 40년(1714년)에 탁본을 가지고 다시 새긴 것입니다. 비문은 마멸과..
- 실상사 수철화상 능가보월탑 실상사 극락전을 향한 그 오른쪽에 실상사 수철화상 능가보월탑이 있습니다. 이 부도는 실상사의 제2조사(第二祖師)인 수철화상의 부도로, 높이가 2.42m입니다. 수철화상(秀澈和尙)은 신라 후기의 스님으로, 본래 심원사(深源寺)에 머물다가 후에 실상사에 들어와 이 절의 두 번 째 창건주가 되었습니다. 진성여왕 7년(893년)에 77세로 입적하니, 왕은 그의 시호를 '수철(秀澈)'이라 하고, 탑호를 '능가보월(楞伽寶月)'이라 하였습니다. - 수철화상 능가보월탑 부도는 통일신라시대 부도의 전형적인 양식인 팔각원당형을 기본으로 삼고 있으며, 높직한 팔각지대석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하대석은 팔각형으로, 1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마모가 심해 자세한 형태는 알 수 없지만, 희미하게나마 ..
- 실상사 증각대사 응료탑비 실상사 극락전에 들어서기 전에 거북 머리를 한 귀부(龜趺) 하나를 볼 수 있습니다. 비신은 어디에 잃어버리고 비머리만 등에 짊어진 채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귀부는 오랜 세월 탓에 닳고 닳아 지금은 희미하게 그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비머리 앞면에 새긴 글자는 지금도 읽을 수 있습니다. - 앞에 응료탑비가 있는 극락전 이 탑비는 증각대사에 대한 기록을 새긴 탑비로, 극락전으로 들어가는 문 바로 앞에 있습니다. 이 탑비는 탑비 뒤편에 있는 증각대사의 부도와 비슷한 시기에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 증각대사 응료탑비 증각대사 응료탑비에서 비신은 일찍이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받침돌인 귀부(龜趺)와 비머리인 이수(螭首)만 남아 있습니다. - ..
- 실상사 증각대사 응료탑 실상사 극락전은 절의 중심 공간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있는 덕분에 찾는 사람이 드문 편입니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실상사의 어느 곳보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곳 극락전 담 밖 한쪽에 신라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인 실상산문(實相山門)의 개산조인 홍척 스님의 사리를 모신 부도가 있습니다. 홍척(洪陟) 스님은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살았으며, 시호는 '증각(證覺)'입니다. - 대석 땅에 넓은 네모꼴의 지대석이 놓여 있고, 그 위에 층단을 이루는 팔각의 2단 하대석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아래쪽에는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고, 위쪽에는 넓은 받침만 있을 뿐 달리 장식이 없습니다.하대석 위에는 높은 팔각의 중석(中石)받침이 따로 놓여 있는데, 모서리마다 모서리기둥이 새겨져 있습니..
- 실상사 철조 여래좌상 실상사 철조 여래좌상은 수철 스님이 4천 근이나 되는 철을 들여 만든 높이 2.7m의 거대한 불상입니다. 상체가 풍만한 이 불상은 두 발을 양 무릎 위에 올려놓은 완전한 결가부좌의 자세를 취하고 꼿꼿하게 앉아 동남쪽인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리산 천왕봉은 일본 후지산과 정면으로 마주 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철조 여래좌상의 시선은 일본의 정기를 누르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광배는 없어졌으며, 불상은 대좌가 아닌 흙바닥에 앉아 있습니다. 대좌가 정유재란 때 실상사가 폐사될 당시에 파손된 것인지, 아니면 일본으로 흘러가는 땅의 기운을 막기 위해 도선국사의 풍수지리설에 따라 일부러 맨땅에 세운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 실상사 철조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