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학루 울산시립미술관 바로 옆에 울산동헌(蔚山東軒)과 내아(內衙)가 있습니다. 동헌은 옛 울산읍성 안의 중심 건물로, 울산도호부(蔚山都護府)의 수령이 공무를 처리하였던 곳입니다. 내아는 수령이 살았던 살림집입니다. 동헌으로 들어가는 누문에 '가학루(駕鶴樓)'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 가학루 가학루는 1600년대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헌종 13년(1847년)에 가학루가 무너질 위험이 있어 허물었다고 하고, 철종 10년(1859년)에 도호부사 이충익이 다시 중건하였으며, 1930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금 건물은 일제강점기 때의 사진을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견하여 2017년에 복원하였습니다. - 내아 내아는 8칸 규모의 'ㄱ' 자형 건물입니다. 온돌방..

- 하천재 영천 강호정(江湖亭) 북쪽에 하천재(夏泉齋)와 신도비각이 있습니다. 하천재는 오천 정씨(烏川鄭氏) 문중의 묘소를 지키기 위해 인조 15년(1637년)에 강의공(剛義公) 정세아(鄭世雅, 1535~1612)의 손자인 진주목사(晋州牧使) 정호인(鄭好仁, 1597~1655)이 세웠다고 합니다. 지금 건물은 그 뒤에 중건된 것으로 보입니다. 신도비각에는 강의공 신도비가 있습니다. 강의공 정세아는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어 많은 전공을 세웠으나, 논공행상에 참여하지 않고 강호정사(江湖精舍)에서 제자를 기르며 학문을 닦아 덕망이 높았던 선비였습니다. - 추원당 하천재 뒤편에 추원당(追遠堂)이 있습니다. 추원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집입니다. 건물은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

- 가락동 행정복지센터 향나무 부산시 강서구의 서북단에 죽림동(竹林洞)이 있습니다. 이곳은 북쪽은 식만동, 서쪽은 죽동동, 남쪽은 봉림동과 접해 있습니다. 동쪽으로 서낙동강이 흐르는데, 대부분이 서낙동강의 퇴적 작용으로 형성된 평야 지대입니다. 오봉산(五峰山, 45m)을 제외하고는 산지가 거의 없습니다.이곳 지명은 과거 오봉산이 섬이었을 때 대밭이 무성하여 죽도(竹島)라고 한 것에서 유래합니다. 마을은 고정, 용등, 죽림이 있습니다. - 대부교비 죽림 마을 북쪽 가락동 행정복지센터에 비석 2기가 있습니다. 대부교비(大夫橋碑)와 애민선정비(愛民善政碑)입니다. 이 비들은 1994년에 다른 장소에서 가락동 행정복지센터로 옮겨왔습니다. 대부교비(大夫橋碑)는 대부교(大夫橋)가 놓이게 된 내력을 알리기 위하여 세..

- 홍포서원 유허비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溪內里)는 낙동강 강가에 있습니다. 이곳은 낙동강 흐름의 바깥쪽이라 퇴적보다는 침식의 영향이 조금 더 강하여 들판이 적고 낮은 구릉으로 되어 있습니다. 낙동강과 그 지류 하천인 광려천(匡廬川) 사이 경사가 완만한 지역에는 칠서일반산업단지가 들어서 있습니다. 이곳 낙동강 강가에 능가사(楞伽寺)가 있습니다. 능가사는 1900년대 초에 한국불교 태고종 용주사로 창건되었고, 1973년에 능가사로 개칭되었습니다. 능가사 바로 앞에 홍포서원 유허비(鴻浦書院遺墟碑)가 있습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능가사는 홍포서원 터에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 홍포서원 유허비 홍포서원 유허비입니다. 유허비에는 '홍포서원유허비(鴻浦書院遺墟碑)'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홍포서원(鴻浦書院..

- 비각(옆면) 경주시 내남면 상신리 길가에 퇴락한 비각이 하나 있습니다. 최치백 정려비(崔致柏 旌閭碑)가 있는 비각입니다. - 비(앞면) 비 앞면에 크게 예서(隷書)로 '효자 증조봉대부 사헌부 지평 최공치백 정려비(孝子 贈朝奉大夫 司憲府 持平 崔公致柏 旌閭碑)'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비의 주인공 최치백(崔致柏, 1676~1744)은 일곱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고기를 먹지 않으니, 어머니가 "너 죽으면 나도 죽는다"라고 하여 그제야 그만두었습니다. 그 후로 지성으로 어머니를 모시니 꿩이 스스로 날아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솔개와 개가 고기를 물어 준 일도 있었습니다. 미물도 그의 효심에 감동하여 벌어진 기적이었습니다. 이후 1728년에 이인좌의 난(무신란(戊申亂))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