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포서원 유허비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溪內里)는 낙동강 강가에 있습니다. 이곳은 낙동강 흐름의 바깥쪽이라 퇴적보다는 침식의 영향이 조금 더 강하여 들판이 적고 낮은 구릉으로 되어 있습니다. 낙동강과 그 지류 하천인 광려천(匡廬川) 사이 경사가 완만한 지역에는 칠서일반산업단지가 들어서 있습니다. 이곳 낙동강 강가에 능가사(楞伽寺)가 있습니다. 능가사는 1900년대 초에 한국불교 태고종 용주사로 창건되었고, 1973년에 능가사로 개칭되었습니다. 능가사 바로 앞에 홍포서원 유허비(鴻浦書院遺墟碑)가 있습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능가사는 홍포서원 터에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 홍포서원 유허비 홍포서원 유허비입니다. 유허비에는 '홍포서원유허비(鴻浦書院遺墟碑)'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홍포서원(鴻浦書院..
- 비각(옆면) 경주시 내남면 상신리 길가에 퇴락한 비각이 하나 있습니다. 최치백 정려비(崔致柏 旌閭碑)가 있는 비각입니다. - 비(앞면) 비 앞면에 크게 예서(隷書)로 '효자 증조봉대부 사헌부 지평 최공치백 정려비(孝子 贈朝奉大夫 司憲府 持平 崔公致柏 旌閭碑)'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비의 주인공 최치백(崔致柏, 1676~1744)은 일곱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고기를 먹지 않으니, 어머니가 "너 죽으면 나도 죽는다"라고 하여 그제야 그만두었습니다. 그 후로 지성으로 어머니를 모시니 꿩이 스스로 날아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솔개와 개가 고기를 물어 준 일도 있었습니다. 미물도 그의 효심에 감동하여 벌어진 기적이었습니다. 이후 1728년에 이인좌의 난(무신란(戊申亂))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
- 표시석 창원시 북면 지개리에 보기 드문 비(碑)가 있습니다. 임금이 하사한 옥(玉)으로 만든 비입니다. 이 비는 지개리 어사옥비(芝介里御賜玉碑)입니다. - 계단 표시석 옆의 시멘트 계단을 올라갑니다. 정우당(淨友堂) 조치우(曺致虞)가 심었다는 고목을 지나 대문을 들어서면... - 추감재 창녕 조씨(昌寧曺氏)의 재실이 있습니다. 건물은 1918년 세워졌으며, 이름이 모선재(慕先齋)에서 추감재(追感齋)로 바뀌었습니다. - 추감재에서 바라본 어사옥비 비각 어사옥비와 관련된 조치우(曺致虞)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하겠습니다. 조치우는 조선 중종 때 대구 부사와 예천 군수 등을 지냈습니다. 청렴하면서 선정을 베푼 공적이 뛰어나 청백리로 기록되었습니다. 조치우와 부인 창원 박씨(昌原朴氏)는 노모 봉양 등 효심..
- 양산 대석리의 작은 둔덕 경남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산 203-2 도롯가에 작은 둔덕이 있습니다. 이곳은 대석마을로 들어가기 바로 전의 도롯가입니다. - 소나무 이곳 둔덕에 잘생긴 소나무 몇 그루가 있고... - 양산 대석리 효열녀비 그리고 귀접이 양식의 비석이 하나 있습니다. 효열녀비(孝烈女碑)입니다. 비의 앞면에 '효열녀사인 김성철처 ◇해김씨지려'(孝烈女士人 金聖喆妻 ◇海金氏之閭)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 부분은 파손되었으나, '김'(金)자로 보입니다. 비의 주인은 김성철의 부인으로, 김해김씨 성을 가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양산 대석리 효열녀비 비의 뒷면에는 '숭정기오경오십일월 일립'(崇禎紀五庚午十一月 日立)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비는 조선 고종 7년(1870년) 11월에 세워졌음..
- 유후재 경북 영천시 대창면 대재리 대재못 옆으로 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들어가면 못 뒤쪽에 재실인 유후재(遺厚齋)와 그리고 옥비(玉碑)가 있고, 그 뒤로는 창녕 조씨 문중 묘역이 있습니다. 유후재(遺厚齋)는 조선 시대 문신 조치우(曺致虞)를 기려 중종 34년(1539년)에 후손들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옥비는 중종 24년(1529년) 조치우 사후에 중종이 내린 옥(玉)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비각은 철종 5년(1854년)에 세워졌고, 최근에 중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 유후재 유후재는 해발 127m의 낮은 구릉성 산지의 말단부에 있으며, 재실, 문간채, 비각 등으로 되어 있습니다. 조치우(曺致虞, 1459~1529)는 조선 성종 때의 문신입니다. 그는 성종 25년(1494년) 별사문과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