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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울산 울산동헌와 정려비

sky_lover_ 2025. 2. 12. 05:22

- 가학루

 

울산시립미술관 바로 옆에 울산동헌(蔚山東軒)과 내아(內衙)가 있습니다.

 

동헌은 옛 울산읍성 안의 중심 건물로, 울산도호부(蔚山都護府)의 수령이 공무를 처리하였던 곳입니다. 내아는 수령이 살았던 살림집입니다.

 

동헌으로 들어가는 누문에 '가학루(駕鶴樓)'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 가학루

 

가학루는 1600년대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헌종 13년(1847년)에 가학루가 무너질 위험이 있어 허물었다고 하고, 철종 10년(1859년)에 도호부사 이충익이 다시 중건하였으며, 1930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금 건물은 일제강점기 때의 사진을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견하여 2017년에 복원하였습니다.

 

- 내아

 

내아는 8칸 규모의 'ㄱ' 자형 건물입니다. 온돌방 4칸, 대청 2칸, 부엌, 누마루가 각 1칸씩 되어 있습니다.

 

- 동헌

 

동헌은 앞면 6칸, 옆면 2칸 건물입니다. 가운데에 2칸의 대청을 두고, 좌우로 2칸씩의 방을 두었습니다.


울산이 부, 현, 도호부 등으로 위치가 격상, 격하될 때마다 폐쇄와 신축을 거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동헌 본 건물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관청 건물입니다. 일제강점기 이후 울주군청의 회의실로 사용되다가 1981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습니다.

 

- 동헌

 

동헌과 내아는 숙종 7년(1681년)에 울산부사 김수오(金粹五)가 처음 지었습니다.

 

동헌은 김수오의 아들인 부사 김호가 '일학헌(一鶴軒)'이라고 편액 하였고, 영조 39년(1763년)에 부사 홍익대가 중창하여 '반학헌(伴鶴軒)'이라고 개칭하였습니다.

 

- 정려비각

 

동헌 뒤편에 효자(孝子) 송도 선생(宋滔先生) 정려비각(旌閭碑閣)이 있습니다.

 

- 정려비각

 

정려비각에는 '정려(旌閭)'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 정려비

 

정려비 앞면에 '효자성균생원 송도지려(孝子成均生員宋滔之閭)'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이 정려비에는 애틋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송도 선생은 연안군(延安君) 송광언(宋光彦)의 후손으로, <세종실록(世宗實錄)>에 그의 효행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송도 선생은 울산 지역 최초의 생원으로, 병든 부모를 10여 년 동안 정성껏 간호하였으나 일 년 사이에 부모가 잇달아 돌아가시자, 몸소 흙과 돌을 다져 무덤을 만들고 사당을 세워 유교식 예법에 따라 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조정에서 세종 10년(1428년)에 효자로 정려되어 표창을 받게 되었습니다.

 

- 깨어진 정려비 일부

 

정려비 왼쪽에 깨어진 비석이 있습니다. 이 비석에 '강희임진(康熙壬辰) 팔월(八月)'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정려비는 숙종 38년(1712년)에 세워진 것으로 보입니다.

 

연안 송씨(延安宋氏) 족보에는 정려비가 본래 효문동에 있었으나, 영조 13년(1737년)에 울산도호부 서쪽 연못 인근으로 옮겨 세웠다고 합니다. 중구 우정동에 있던 비석과 비각은 2006년에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소재지: 울산시 중구 북정동 350-1.

 

(202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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