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상사 수철화상 능가보월탑 실상사 극락전을 향한 그 오른쪽에 실상사 수철화상 능가보월탑이 있습니다. 이 부도는 실상사의 제2조사(第二祖師)인 수철화상의 부도로, 높이가 2.42m입니다. 수철화상(秀澈和尙)은 신라 후기의 스님으로, 본래 심원사(深源寺)에 머물다가 후에 실상사에 들어와 이 절의 두 번 째 창건주가 되었습니다. 진성여왕 7년(893년)에 77세로 입적하니, 왕은 그의 시호를 '수철(秀澈)'이라 하고, 탑호를 '능가보월(楞伽寶月)'이라 하였습니다. - 수철화상 능가보월탑 부도는 통일신라시대 부도의 전형적인 양식인 팔각원당형을 기본으로 삼고 있으며, 높직한 팔각지대석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하대석은 팔각형으로, 1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마모가 심해 자세한 형태는 알 수 없지만, 희미하게나마 ..
- 무장사터 삼층석탑 무장사터는 암곡동 왕산마을 뒤쪽에 있는 무장산(동대봉산)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 절터는 산골짜기 깊숙이 들어와 있어 그리 넓은 편은 아니지만, 절터 앞쪽에 통일신라시대에 세운 석탑 하나가 서 있습니다. 이 탑은 탑재 일부가 없어진 채 무너져 있던 것을 1962년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다시 세웠습니다. - 무장사터 삼층석탑 탑은 이층 기단 위에 삼층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양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탑과는 달리 상층기단 면석에 안상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이처럼 상층기단 면석에 안상무늬를 새긴 것은 흔하지 않습니다. - 기단부 하층기단은 하대저석과 하대중석을 붙여 하나의 돌로 하였고, 이곳 면..
- 무장사 아미타불 조상 사적비 무장산이 널리 알려지면서 지금은 주말이 되면 꽤 많은 사람이 찾지만, 무장사터는 몇 년 전만 해도 찾는 사람이 드문 매우 호젓한 곳이었습니다. 이곳 가장 후미진 곳에 비신은 없어지고 비받침과 비머리만 남은 비가 하나 있습니다. 무장사터를 찾는 사람 가운데서 이 비를 관심을 두고 살펴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그냥 휭하니 둘러보고는 보물이라고 하더니 뭐냐 하는 듯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곤 합니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우리는 아는 것만큼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 뒷면이 비는 신라 제39대 소성왕(재위 798∼800년)의 왕비인 계화부인(桂花夫人)이 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아미타불상(阿彌陀佛像)을 만들면서 그 과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따라서 비의 건립연대는 소..
- 실상사 증각대사 응료탑비 실상사 극락전에 들어서기 전에 거북 머리를 한 귀부(龜趺) 하나를 볼 수 있습니다. 비신은 어디에 잃어버리고 비머리만 등에 짊어진 채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귀부는 오랜 세월 탓에 닳고 닳아 지금은 희미하게 그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비머리 앞면에 새긴 글자는 지금도 읽을 수 있습니다. - 앞에 응료탑비가 있는 극락전 이 탑비는 증각대사에 대한 기록을 새긴 탑비로, 극락전으로 들어가는 문 바로 앞에 있습니다. 이 탑비는 탑비 뒤편에 있는 증각대사의 부도와 비슷한 시기에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 증각대사 응료탑비 증각대사 응료탑비에서 비신은 일찍이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받침돌인 귀부(龜趺)와 비머리인 이수(螭首)만 남아 있습니다. - ..
- 실상사 증각대사 응료탑 실상사 극락전은 절의 중심 공간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있는 덕분에 찾는 사람이 드문 편입니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실상사의 어느 곳보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곳 극락전 담 밖 한쪽에 신라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인 실상산문(實相山門)의 개산조인 홍척 스님의 사리를 모신 부도가 있습니다. 홍척(洪陟) 스님은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살았으며, 시호는 '증각(證覺)'입니다. - 대석 땅에 넓은 네모꼴의 지대석이 놓여 있고, 그 위에 층단을 이루는 팔각의 2단 하대석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아래쪽에는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고, 위쪽에는 넓은 받침만 있을 뿐 달리 장식이 없습니다.하대석 위에는 높은 팔각의 중석(中石)받침이 따로 놓여 있는데, 모서리마다 모서리기둥이 새겨져 있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