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장사 아미타불 조상 사적비 무장산이 널리 알려지면서 지금은 주말이 되면 꽤 많은 사람이 찾지만, 무장사터는 몇 년 전만 해도 찾는 사람이 드문 매우 호젓한 곳이었습니다. 이곳 가장 후미진 곳에 비신은 없어지고 비받침과 비머리만 남은 비가 하나 있습니다. 무장사터를 찾는 사람 가운데서 이 비를 관심을 두고 살펴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그냥 휭하니 둘러보고는 보물이라고 하더니 뭐냐 하는 듯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곤 합니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우리는 아는 것만큼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 뒷면이 비는 신라 제39대 소성왕(재위 798∼800년)의 왕비인 계화부인(桂花夫人)이 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아미타불상(阿彌陀佛像)을 만들면서 그 과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따라서 비의 건립연대는 소..
- 무장산 억새평원 무장봉 정상에서 발아래로 펼쳐진 억새평원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하지만 계속 여기에 머물 수는 없는 법, 아쉬움을 뒤로 하고 아래로 내려섭니다. 오를 때와는 달리 이제는 내리막길이 계속 이어집니다. - 무장산 억새평원 억새평원 가운데로 널찍한 길이 나 있습니다. 길가로는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억새가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 무장산 억새평원 내려가는 동안 억새밭은 한동안 계속됩니다. - 무장산 억새 평원 아직도 억새밭은 이어집니다. - 옛 오리온목장의 폐건물들 억새밭은 끝나고, 이제 본격적인 하산길로 접어듭니다. 멀리 옛 오리온목장의 폐건물들이 스산한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 옛 오리온목장터 계속 내려오다 보면 옛 오리온목장터도 보입니다. - 무장사터로 내려가는 산길 이제..
- 무장봉으로 올라가는 비탈길 무장산(동대봉산 무장봉)은 어느 때든 나름대로 멋이 있지만, 가을이 가장 좋습니다. 이때가 되면 계곡에는 울긋불긋한 단풍들로 가득하며, 산 정상 능선에는 광활한 억새평원이 펼쳐집니다. 무장산의 들머리는 암곡동 왕산마을입니다. 이곳은 몇 년 전만 해도 조용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지금은 주말이 되면 등산객들로 엄청나게 북적거리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장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로 여러 편의시설이 들어서면서 예전보다는 산을 오르내리기에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를 얻으면 또 다른 하나는 잃는 법, 무엇보다도 지금의 무장산은 호젓함을 잃어버렸습니다. 무장산은 한 바퀴 빙 둘러서 다녀올 수 있습니다. 보통은 시계방향으로 도는 코스를 택합니다. 이 길은 비교적 평탄한..
- 실상사 증각대사 응료탑비 실상사 극락전에 들어서기 전에 거북 머리를 한 귀부(龜趺) 하나를 볼 수 있습니다. 비신은 어디에 잃어버리고 비머리만 등에 짊어진 채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귀부는 오랜 세월 탓에 닳고 닳아 지금은 희미하게 그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비머리 앞면에 새긴 글자는 지금도 읽을 수 있습니다. - 앞에 응료탑비가 있는 극락전 이 탑비는 증각대사에 대한 기록을 새긴 탑비로, 극락전으로 들어가는 문 바로 앞에 있습니다. 이 탑비는 탑비 뒤편에 있는 증각대사의 부도와 비슷한 시기에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 증각대사 응료탑비 증각대사 응료탑비에서 비신은 일찍이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받침돌인 귀부(龜趺)와 비머리인 이수(螭首)만 남아 있습니다. - ..
- 실상사 증각대사 응료탑 실상사 극락전은 절의 중심 공간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있는 덕분에 찾는 사람이 드문 편입니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실상사의 어느 곳보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곳 극락전 담 밖 한쪽에 신라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인 실상산문(實相山門)의 개산조인 홍척 스님의 사리를 모신 부도가 있습니다. 홍척(洪陟) 스님은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살았으며, 시호는 '증각(證覺)'입니다. - 대석 땅에 넓은 네모꼴의 지대석이 놓여 있고, 그 위에 층단을 이루는 팔각의 2단 하대석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아래쪽에는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고, 위쪽에는 넓은 받침만 있을 뿐 달리 장식이 없습니다.하대석 위에는 높은 팔각의 중석(中石)받침이 따로 놓여 있는데, 모서리마다 모서리기둥이 새겨져 있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