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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독락당 안을 들여다보다.

sky_lover_ 2017. 3. 9. 10:16

- 독락당 계정


산서원에서 개울을 따라 600m쯤 올라가면 독락당(獨樂堂)이 있습니다.

독락당은 조선시대 유학자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과 관련이 깊습니다. 그가 조정에서 쫓겨난 약 7년간 이곳에 머물렀습니다. 이곳에서 물 흐르는 소리에 마음을 씻고 홀로 도를 즐기며 세상의 권세를 잊으려 했습니다. 락당의 '독락(獨樂)'은 맹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옛날 어진 선비들은 어찌 홀로 그렇지 않았겠는가? 자신의 도를 즐겼고, 사람의 권세를 잊었다."


- 독락당으로 들어가는 길


독락당은 바깥에서 집안까지 단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집안 중간중간의 담과 문을 거쳐 돌아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과 인연을 끊는 일련의 절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향나무


대문 안을 들어서면 오랜 세월을 버텨온 커다란 향나무 한 그루가 마당 한쪽에 있습니다.


- 독락당


독락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별당입니다. 기단이 낮으며, 팔작지붕으로 남향입니다. 오른쪽 3칸은 대청이고, 왼쪽 1칸은 온돌방입니다.


- 현판


독락당 정면에 '옥산정사(玉山精舍)'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현판 글씨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썼습니다. 그 뒤로 걸려있는 '독락당'이란 현판은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가 썼습니다.


- 담장의 살창


독락당 동쪽 담에 살창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독락당 대청에서 개울을 바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독락당 대청과 개울을 이어주는 멋진 통로입니다.


- 양진채(계정)


양진채는 독락당의 별채입니다. 원래는 회재의 아버지 이번(李蕃)이 쓰던 3칸짜리 초옥을 회재가 은거하면서 기와지붕으로 바꾸고 옆으로 2칸을 더 달아 계정(溪亭)이라 하였습니다.


계정을 양진암(養眞庵)이라고도 하는데, 건물 한쪽에 '양진암(養眞庵)'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현판 글씨는 퇴계가 썼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왜 절의 암자 이름을 붙였을까요? 가까이 있었던 정혜사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 계정


계정은 독락당의 꽃입니다.


건물이 다른 건물과는 달리 개울 쪽으로 튀어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건물 자체를 돋보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개울을 좀 더 가까이 느껴보기 위해서였겠지요. 바깥세상에는 폐쇄적이었지만, 자연을 향해서는 마음을 열어두었던 당시 회재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 현판


계정 마루에 서서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면 '계정(溪亭)'이라 쓴 현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현판 글씨는 석봉(石峯) 한호(韓濩)가 썼다고 합니다.


- 마루


계정 마루에 서면 바깥 풍경이 바로 눈앞입니다.


- 난간 사이로 보이는 개울


난간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면... 독락당에서 가장 멋진 풍경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곳에선 안과 밖 그 경계마저 희미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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