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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통신사행렬도 부분
부산박물관에 전시된 <조선통신사행렬도>입니다. 일본을 방문한 조선통신사 일행의 행렬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조선이 명나라로부터 태종 3년(1403년)에 책봉을 받고 난 그 이듬해에 일본의 막부 장군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도 책봉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두 나라는 대등한 교린국(交隣國)이 됐습니다. 1404년 7월에 일본은 막부 장군의 사신을 조선에 보냈습니다. 이때 조선에서는 일본 막부 장군을 일본 국왕이라 칭했고, 그의 사신을 일본국왕사(日本國王使)라고 했습니다.
한편 조선 국왕도 일본 막부 장군에게 사신을 보냈는데, 이 사신을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라고 했습니다. 통신사(通信使)는 '국가 간에 믿음을 통하기 위한 사절'이라는 뜻입니다. 조선통신사는 대부분 일본의 새로운 막부 장군이 자리에 오르면 축하 사절 명목으로 파견됐고, 양국 간 외교 현안 해결과 정세 파악이 주 임무였습니다.
조선통신사는 정사(正使)·부사(副使)·종사관(從事官) 등 수뇌부와 수행원·역관·의원·화원(畵員) 등 500명 전후한 대규모로 꾸려졌습니다. 한양을 떠나 부산에 도착해서 배를 타고 대마도를 거쳐 일본 본토에 상륙했으며, 이후 오사카까지 해로를 이용한 뒤 육로로 에도(지금의 도쿄)까지 갔습니다. 왕래에 대략 8개월이 걸렸으며, 2년을 넘기도 했습니다.
임진왜란 후에는 조선에서 일본국왕사를 원치 않아 조선통신사만 일본으로 갔습니다. 이때 통신사 파견 비용은 부산을 벗어나면 모두 일본 측에서 댔습니다. 따라서 조선통신사가 일본땅에 도착하면 행렬이 지나는 길목의 번주(藩主)들이 숙식과 호위를 책임졌습니다. 이것은 조선통신사에 대한 일본 측의 요구가 그만큼 컸다는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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