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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석파정
서울 인왕산 북쪽 자락에 서울미술관이 있습니다. 이곳은 숲이 울창하고 경치가 아름다우면서도 경복궁과 서촌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이곳 후원(後園)에 흥선대원군의 별서(別墅)였던 석파정(石坡亭)이 있습니다.
석파정은 구한말 세도정치를 이끌었던 안동김씨 일원으로 철종 때 영의정까지 올랐던 김흥근(金興根, 1796~1870)의 별서로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이 집권한 뒤 반강제적으로 헌납받아 자신의 별서로 사용했습니다. 고종도 이곳에 가끔 머물렀기 때문에 행궁의 역할도 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흥선대원군의 후손들이 소유하다가 한국전쟁 후 고아원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지금은 서울미술관 후원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석탑
석파정 입구 계곡 건너편 언덕에는 다른 곳에서 옮겨온 석탑이 있습니다.
- '소수운련암' 각자
이곳에는 석파정의 내력을 말해주는 각자가 몇 있습니다. 석탑 바로 아래 바위 면에 있는 각자입니다. '소수운련암(巢水雲簾岩)' 각자입니다.
"소수운련암 한수옹서증 우인정이시 신축세야(巢水雲簾岩 寒水翁書贈 友人定而時 辛丑歲也)"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뜻은 "물을 품고 구름이 발을 치는 집으로, 한수옹(권상하(權尙夏), 1641~1721)이 벗 정이(조정만(趙正萬), 1656~1739)에게
신축년(1721년)에 글을 써주다."입니다.
조정만은 조선 숙종 때 문신입니다. 그의 별서 조성에 관한 기록은 따로 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각자를 통해 18세기 초 또는 그 이전부터 이곳에 별서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 사랑채
지금 석파정은 사랑채, 안채, 별채로 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사랑채의 모습입니다. 사랑채는 앞면 5칸에 누마루를 두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이곳에 난을 그리는 등 예술활동을 하였다고 합니다.
- 별채로 들어가는 협문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는 뒤편 높은 곳에 있는 별채로 들어가는 작은 협문이 있습니다. 협문은 벽돌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중국풍 건축 양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별채에서 내려다본 안채의 모습
별채에서 내려다본 안채의 모습입니다.
안채는 폐쇄적인 'ㅁ'자형 건물입니다. 국왕의 행차에 동행한 왕비와
수행인들을 배려한 구조로 보입니다. 안채는 지금도 외부인에게는 개방되지 않고, 석파정을 소유하고 있는 서울미술관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삼계동' 각자
사랑채 서쪽 바위 면에 '삼계동(三溪洞)' 각자가 있습니다.
김흥근이 별서를 지어 경영할 당시에 이곳을 삼계동정사(三溪洞亭舍)로 불렀다고 합니다. 그 사실을 '삼계동' 각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석파정이라는 이름은 흥선대원군이 소유하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 반송
사랑채 서쪽 옆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멋진 자태를 뽐내는 반송(盤松)입니다. 처음 이곳에 별서를 지은 사람이 심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소나무의 나이는 얼마 되었을까요? 그 나이를 가늠하긴 어렵지만, 족히 300년은 되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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