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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 철천리 석조여래입상
나주 철천리 석조여래입상은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 미륵사 뒤편 언덕에 있습니다.
이 석불은 높이가 5.38m나 되는 큰 부처님으로, 불상과 광배, 그리고 대좌가 하나의 돌로 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백제 때는 실어산현(實於山縣), 통일신라 이후 조선 초까지 철야현(鐵冶縣)이었던 지역으로 철야마을과 이웃하고 있습니다.
석불 바로 뒤에 '산황대신지위(山皇大神之位)'라 쓴 비석이 서 있는 커다란 무덤이 있습니다. 얼핏 보면 석불이 마치 무덤을 지켜주기 위해 서 있는 수호신처럼 보입니다. 이처럼 절터에 무덤을 쓰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이것은 절터가 명당이라는 인식 탓이겠지만, 그렇게 해서 얼마나 효험을 보았는지 조금은 궁금해집니다.

- 철천리 석조여래입상
이 석불은 민머리 위에 육계가 뚜렷하며, 얼굴은 사각형으로 약간 비만해 보입니다.
반쯤 뜬 길쭉한 눈과 큼직하고 납작한 코, 그리고 크지만 약간 미소를 띠고 있는 입, 이런 모습들에서 통일신라시대 석불에서 느낄 수 있는 온화한 부드러움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목은 짧고 굵은데, 삼도(三道)가 뚜렷하게 표현되었습니다.

- 철천리 석조여래입상
체구는 얼굴에 비하여 다소 짧은 편이나 당당한 느낌이 듭니다.
두 팔은 두꺼운 옷자락에 의하여 양손만이 드러났는데, 오른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하여 밑으로 내리고, 왼손은 위로 향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시무외인(施無畏印)·여원인(與願印)과는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시무외인·여원인은 부처님이 중생에게 베풀어 소원을 들어준다는 뜻입니다.

- 철천리 석조여래입상
둥근 어깨에는 통견(通肩)의 법의를 걸쳤는데, 가슴이 거의 노출되지 않고 몸 전체에 걸쳐 옷 주름이 묘사되었습니다. 즉, 가슴에서 발목까지 U자형의 옷 주름이 도드라지게 표현되었고, 두 팔에 걸쳐진 옷자락은 길게 수직선을 이루며 발아래까지 늘어져 있습니다. 다른 신체에 비해 발이 지나치게 작게 되어 있어 어색해 보입니다.
광배는 주형거신광(舟形擧身光)으로, 두 줄의 선으로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구분하였습니다. 두광 안에는 연꽃무늬와 불꽃무늬를, 신광에는 불꽃무늬를 새겼으나 그리 뛰어난 편은 못 됩니다. 대좌는 사각대좌로서 아무런 장식도 없습니다.
이 석불은 비만한 얼굴에 당당하면서도 괴체화(塊體化)된 신체의 표현, 대칭적이며 규칙적인 옷 주름의 표현 등은 고려시대 초부터 유행한 거대한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조성시기는 10세기 후반경으로 추정됩니다. 전체적인 상태는 훼손되어 가는 석불에 대한 보존처리를 2010년에 해서 그런지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