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 '흥복사가람춘일사경내회도(興福寺伽藍春日社境內繪圖)'에서의 고후쿠지 중심부(도판), 寶永 5年(1708년)

 

라에서 고후쿠지(興福寺) 호류지(法隆寺)와 도다이지(東大寺)와 같이 중요한 절입니다.

 

절의 기원은 669년에 후지와라노 가마타리(藤原鎌足)의 부인인 가가미노 오오키미(鏡大王)가 부군의 쾌유를 기원하며 야마시나 수에하라(山階陶原, 현재 교토)에 있는 저택터에 세운 절인 야마시나데라(山階寺)입니다. 그 후 몇 년 후에 나라현의 우마야사카(厩坂)로 옮겨 우마야사카데라(厩坂寺)라고 하였습니다.

710년에 수도가 헤이조쿄(平城京, 현재 나라)로 옮겼을 때 지금의 장소로에 옮겼고, 이때부터 고후쿠지라 하였습니다. 이후 황족과 후지와라(藤原)일족의 보호를 받아 급속히 발전했습니다. 특히 섭관가(摂関家, 섭정(摂政)을 내보낸 가문)인 후지와라 북가(藤原北家)와의 관계가 깊어서 극진한 보호를 받아 세력을 크게 늘렸습니다. 나라시대(奈良時代)에는 4대 절의 하나였고, 헤이안시대(平安時代)에는 7대 절의 하나였습니다.

헤이안시대에는 가스가타이샤(春日大社)의 실권을 수중에 넣어 야마토(大和, 현재 나라현)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카마쿠라시대(鎌倉時代)와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에는 막부(幕府)가 고후쿠지를 야마토의 슈고(守護, 지방의 통치자)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무로마치시대 후반부터 서서히 세력을 잃었습니다. 그러다 메이지시대(明治時代) 초기인 1868년쯤에 불교 배척운동으로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때 신불분리령(神佛分離令)에 의해 고후쿠지에서 가스가타이샤가 분리되었고, 절의 재산도 대부분 몰수당했습니다. 그런데도 고후쿠지는 다시 일어나 법상종의 대본산으로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위 그림은 1708년의 고후쿠지 모습입니다. 당시 건물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동금당, 북원당, 남원당, 삼중탑, 오중탑뿐입니다. 서금당, 중금당, 남대문, 중문 등은 없어졌습니다.

 

- 북원당, 카마쿠라시대, 1210년

 

북원당(北円堂)은 절의 중심에서 서쪽 편에 있습니다. 고후쿠지의 창건자인 후지와라노 후히토(藤原不比等) 사후 1주기인 721년에 겐메이(元明) 전 천황겐쇼(元正) 천황의 발원으로 세워졌습니다. 그 후 화재로 소실되었고, 지금의 건물은 1210년에 재건되었습니다.

 

이곳에는 카마쿠라시대의 유명한 불사(佛師) 운케이(運慶)가 만든 미륵여래좌상, 무쟈쿠(無著)입상, 세신(世親)입상이 있고, 그리고 헤이안시대에 만들어진 사천왕상도 있습니다.

 

- 북원당 내부(도판)

 

북원당 내부의 모습입니다. 협시보살상이 있는 미륵여래좌상을 중심으로 뒤쪽에 나한상인 무쟈쿠(無著)입상과 세신(世親)입상이 있고, 네 모서리에 사천왕상이 있습니다.

 

- 미륵여래좌상(도판), 카마쿠라시대, 1212년경

 

북원당의 본존불로, 운케이(運慶)가 만든 조 불상입니다. 수인을 아미타인으로 하였고, 결가부좌 하였습니다. 전체적으로 신체의 충실함과 강한 의지력이 느껴집니다.

 

- 세신(世親)입상(도판), 카마쿠라시대, 1212년경

 

운케이(運慶)가 만든 목조 나한상입니다. 매우 사실적인 모습이며, 강한 의지를 나타내듯 당당한 자세로 서 있습니다.

 

- 광목천입상(도판), 헤이안시대, 791년

 

목심건칠조(木心乾漆造) 사천왕상입니다. 이 사천왕상은 나라 대안사(大安寺)에 전해오던 것을 옮겨온 것이라 합니다.

 

- 남원당, 에도시대, 1789년

 

남원당(南円堂)은 북원당 남쪽에 있습니다. 813년에 후지와라노 후유쓰구(藤原冬嗣)가 세웠습니다. 그 후 여러 차례 화재가 있었고, 지금의 건물은 1789년에 재건되었습니다.

 

이곳에는 불공견색관음상(不空羂索観音菩薩像), 사천왕상, 법상육조상(法相六祖像, 지금은 국보관에 있음)이 있습니다.

 

- 남원당 후면

 

남원당 후면의 모습입니다.

 

- 불공견색관음보살좌상(不空羂索觀音菩薩坐像)(도판), 카마쿠라시대, 1189년

 

남원당의 본존불로, 목조 불상입니다. 1189년에 불사(佛師) 코우케이(康慶)가 만들었습니다. 1180년 화재로 소실된 본존불(746년 제작)을 본떠 만들었습니다.

 

이 관음보살좌상은 모두 8개의 손을 가졌습니다. 제1의 손은 양손을 가슴 앞에 합장하였습니다. 제2의 손은 왼손에 연꽃을, 오른손에 석장(錫杖)을 쥐었습니다. 제3의 손은 양손을 아래로 내려 손바닥을 앞을 향하고 손가락을 폈습니다. 제4의 손은 왼손에 끈을, 오른손에 불자(払子)를 쥐었습니다.

 

- 다문천입상(도판), 카마쿠라시대, 12~13세기

 

사천왕상은 목조상입니다. 그동안 코우케이 일문(康慶一門)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의하면, 가금당(仮金堂)의 사천왕상이 원래 남원당에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지금의 사천왕상은 원래 어디에 있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 증장천입상(도판), 카마쿠라시대, 12~13세기

 

지금의 사천왕상은 가금당의 사천왕상보다 스케일이나 세련미가 뛰어나고, 보다 역동적입니다. 매우 숙달된 불사(佛師)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가금당의 증장천입상(도판), 카마쿠라시대, 1189년

 

가금당의 사천왕상 가운데 증장천입상입니다. 가금당의 사천왕상은 원래는 남원당에 있었습니다. 목조상이며, 1189년에 코우케이(康慶)가 만들었습니다. 지금 남원당의 사천왕상과 여러모로 비교됩니다.

 

- 겐빈(玄賓)좌상(도판), 카마쿠라시대, 1189년

 

법상육조상(法相六祖像) 가운데 하나인 겐빈(玄賓)좌상입니다. 매우 사실적인 목조상입니다. 카마쿠라시대 조각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으며, 코우케이(康慶)가 만들었습니다.

 

법상육조상은 고후쿠지 창건 초부터 있었으나, 1180년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그래서 1189년에 코우케이 일문(康慶一門)에 의해 다시 만들어졌습니다. 법상육조(法相六祖)는 법상종을 발전시킨 여섯 승려를 말합니다. 나라시대와 헤이안시대에 활약한 고승 가운데서 뽑았습니다. 신에이(新叡),  교우가(行賀), 죠우도우(常騰), 겐보우(玄昉), 젠쥬(善珠), 겐빈(玄賓)을 말합니다.

 

- 삼중탑, 카마쿠라시대, 13세기초

 

삼중탑(三重塔)은 남원당 서쪽에 있습니다. 1143년에 스토쿠(崇徳) 천황의 황후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1180년에 불에 타 소실되어 카마쿠라시대 초(13세기)에 다시 세워졌습니다. 고후쿠지에서 북원당과 함께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1층 내부에는 약사여래상(동쪽), 석가여래상(남쪽), 아미타여래상(서쪽), 미륵여래상(북쪽)이 각각 1,000구씩 판자에 그려져 있습니다.

«   2025/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