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 계산성당의 이인성 나무
계산성당(桂山聖堂)에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보기 위해 대구로
갑니다.
이 나무는 '이인성 나무'라는 감나무입니다.
그냥 봐선 그저 평범해 보이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이 나무가 유명해진 것은 이인성의 <계산동 성당>이란 그림 때문입니다.
이인성(1912~1950)은 대구가 자랑하는 천재
화가입니다. 그의 그림 하나로 나무에 이름까지 붙여 기념할 정도이니 이곳 사람들이 그에 대해 느끼는 애정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인성, 계산동 성당, 1930년경, 종이에
수채, 35.5 x 4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인성의
<계산동 성당>이란 그림입니다. 어느
겨울날 계산성당의 정경을 그렸습니다.
이 그림에서 성당 앞의 기와지붕 위로 나무 한 그루가 보입니다. 이 나무가 바로 이인성 나무라고
합니다.
그림은 불투명한 수채물감으로 그려졌는데, 실제 대상의 형태나 색감에 연연하지 않고
감각적으로 느껴진 인상이 표현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다소 어둡고 우울하게
느껴지지만, 파스텔 색조의 미묘한 색의 변화에서는 따뜻한 빛의 느낌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이인성은 18세의 어린
나이에 당시 대표적 관전(官展)인 <제8회 조선미술전람회(1929년)>에
입상한 이후로 6회 연속 특선을 차지했고, 화가로서 최고의 영예인 국전 추천작가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50년
11월 불의의 사고로 39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 이인성 나무
이인성 나무는 성당 건물과 계산문화관 건물 사이에 서 있습니다. 보기에는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지는 않는데, 수령이 100년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 이인성 나무와 그림 <계산동 성당>에 대한 안내판
나무 곁에는 최근에 설치한 듯한 안내판이 있습니다. 이인성 나무와 이인성의 그림
<계산동 성당>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
- 계산성당
계산성당은 대구 지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1900년대
초기의 건물입니다. 전체적으로는 둔중한 로마네스크 양식을 띠고 있지만,
첨탑과 스테인드글라스 등의 고딕식 요소들이 부분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계산성당의 시작은 1886년에 로베르(Robert A.P. 1853∼1922)
신부가 대구 지역 선교 활동을 책임지고
부임하면서부터입니다. 이곳 땅을 매입하여 1899년에 지어진 목조 한식 건물의 성당이 1년 만에 화재로
소실되자 성당을 다시
지어 1902년에 지금의 건물이 완공되었습니다.
계산성당은 대구 사람들에겐 남다른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인성의 그림 배경이 된 것도 그렇고, 이곳 출신의 시인인
이상화가 이 성당에 영감을 받아 '나의 침실로'라는 시를 쓴 것도 그렇습니다. 여담이지만, 1950년 12월 12일 박정희와 육영수 이 두 사람이 만난 지 겨우 두 달 만에
결혼식을 올린 곳도 바로 이곳입니다.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 부산비엔날레 엿보기 (0) | 2014.10.01 |
---|---|
경주 풍력발전소 (0) | 2014.06.20 |
분청사기 인화문 '과'명 접시 (0) | 2014.05.29 |
겸재 정선의 여산초당도(廬山草堂圖) (0) | 2014.01.24 |
통영 비진도(3), 설풍치 입구에서 다시 내항마을로 (0) | 2014.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