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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도사터 오층석탑
대구박물관
앞뜰에 정도사터 오층석탑(淨兜寺址五層石塔)이 있습니다. 탑은 5층 지붕돌과 상륜부 일부가
없어졌지만,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좋습니다.
이 탑은 원래 경북 칠곡군 약목면 복성리의 버려진 절터에
있었습니다. 1905년
경부선 철도가 놓이면서 탑이 철도에 인접해 있어
해체되어 경복궁으로 옮겨졌습니다. 그 후 국립중앙박물관 정원으로 옮겨졌으며,
1994년
대구박물관이 개관되면서 지금의 장소로 옮겨졌습니다.
- 하층기단 면석의 안상무늬
기단부는
지대석 위에 2층 기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층기단 면석에 면마다 3개씩 안상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안상무늬 안에 귀꽃 문양이 따로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고려시대 양식의 안상무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정도사터 오층석탑
상층기단부에는
면석마다 모서리기둥과 1개의 가운데기둥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한 면의 면석은 색깔이 다른 면석과 전혀 다릅니다.
이 면석은 명문이 새겨져 있는 면석입니다. 명문을 보호하기 위해
2001년에 원래 면석을
새것으로 교체했고, 원래 면석은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명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석(釋) 지한(智漢)은) 특별히 국가가 항상 평안하고 전쟁이 영원히 그치며, 백곡이 풍성하게 익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탑을 삼가 만들고 영원히 공양합니다. 태평(太平) 11년 신미년 정월 일. … 원하기를 …
(特爲/家國恒安兵伐永/息百穀豊登敬造/此塔永充/供養/太平十一辛未正月 日/願)
여기에서 태평(太平)은 거란족이 세운 요(遼)나라의
연호입니다. 이처럼 거란의 연호를 사용한 것은 3차례에 걸친 거란 침입 후 고려가 전략적으로 송나라와 국교를 단절하고 거란과 관계를 맺었음을 보여줍니다.
태평 11년 신미년은 고려 현종 22년(1031년)에 해당합니다.
- 1층 몸돌 면석의 문비장식
상층기단
갑석 윗면에 있는 1층 몸돌 받침이 1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인 양식과는 조금 다릅니다. 그런가 하고 보니 하층기단 갑석 윗면에 있는 상층기단
면석 받침도 1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탑신부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습니다. 몸돌에는 면마다 모서리기둥이 새겨져
있습니다. 정면
1층 몸돌에는 문비장식이 있습니다. 이 문비장식 안에는 자물쇠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 정도사터 오층석탑
2층 이상의 몸돌에서는 높이가 급격히
감소하였습니다. 지붕돌은 낙수면이 급한 편이며, 층급받침은 4단입니다. 5층 지붕돌이
없어져 5층 몸돌 위에 상륜부의 노반이 놓여 있습니다.
- 정도사터 오층석탑 (사진 출처:
조선고적도보)
경복궁으로 옮겨진 후의 정도사터 오층석탑의
모습입니다.
경복궁으로
탑이 옮겨질 때 탑 안에서
"태평십일년세차신미정월사일고려국상주계지경산부사임약목군내손방재정도사오층석탑조성형지기(太平十一年歲次辛未正月四日高麗國尙州界知京山府事任若木郡內巽方在淨兜寺五層石塔造成形止記)"라는
긴 제목으로 쓰인 백지묵서(白紙墨書)와 그리고 녹유사리병과 동합(銅盒) 등의 사리장치가 발견되었습니다.
- 형지기가 든 청동 그릇과 형지기 (사진 출처: 조선고적도보)
정도사터
오층석탑에서
나온 형지기(形止記)입니다.
이 형지기는 종이에
먹으로 쓴 것인데, 건탑의 인연(因緣), 시납(施納)의 상황, 공사의 사실, 양전(量田) 등이 이두식 표현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탑이 있었던 절이 정도사(淨兜寺)라는 것과 그리고 이 탑이 상주계(尙州界) 경산부(京山府)에 속했던
약목군(若木郡)의 향리와 백성들에 의해 1019년에서 1031년에 걸쳐 발원되어 세워졌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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