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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수궁 광명문
덕수궁
중화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이는 모퉁이에 '광명문(光明門)'이란 쓴 편액이 걸린 문이 있습니다. 걸린 편액으로 보아선 틀림없이 문인
것 같은데, 사람이 지나다닐 수 없게 안에 동종과 자격루 등이 있습니다. 문이라기보다는 무슨 보호각
같습니다.
광명문은 원래 덕수궁 침전인 함녕문으로 들어가는 바깥 행각의 문이었습니다. 그것이 엉뚱하게 지금 자리로
옮겨져 더는 문으로서 쓸모가 없게 되자 이렇게 동종과 자격루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 광명문의 이전 모습
광명문의 이전 모습입니다. 같은 문인데, 지금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게 보입니다. 뒤로는 함녕전이 있습니다.
- 흥천사 동종
이곳에 있는 종은 흥천사 동종입니다. 여기에는 파란만장한 사연이 있습니다.
조선
태조 5년(1396년) 신덕왕후가 죽자 태조는 지금 경향신문사에서 러시아 공사관 터에 이르는 곳 어디쯤 능(정릉)을 만들고, 그 동쪽에 명복을
비는 원찰로 흥천사(興天寺)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태조가 죽자 그 이듬해인 태종 9년(1409년)에 신덕왕후에 적대감을 품고 있던 태종이
신덕왕후의 능을 당시 한양 도성 밖인 양주 땅(지금 성북구 정릉동)으로 옮겨버렸습니다.
흥천사는 신덕왕후의 능이 옮겨진 뒤에도 남아 있었던 듯하며, 연산군 10년(1504년)과 중종 5년(1510년)에 일어난 화재로 폐사되었습니다. 절이 없어진 뒤 흥천사 동종은 흥인문을 거쳐
광화문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 때 광화문이 제자리를 잃어버렸을 때 창경궁으로 옮겨졌고, 해방 후에 이곳 덕수궁으로
옮겨졌습니다.
종은 돌고 돌아 결국에는 원래 자리 근처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엉뚱한 자리에 갇혀 더는 소리를 내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 자격루
자격루는 세종 때 장영실이 처음 만든
물시계입니다. 당시 경복궁 경회루 앞의 보루각에 설치되어 표준시계 역할을 하였습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자격루는 세종대의 것이
아니라 중종 연간에 새로 만들어 창경궁에 설치했던 것입니다. 자격루는 매우 크고 복잡한 기계였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부분은 물동이와 놋쇠 원통
두 개뿐입니다. 망가져도 너무 망가져 도저히 자격루라고 할 수 없는 자격루의 파편일 뿐입니다.
지금 광명문은 그 이름과는 달리 별로 밝아 보이질 않습니다. 오히려 처량해 보입니다. 이곳에
있는 흥천사 동종과 자격루의 신세도 광명문과 별로 다를 바 없습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스쳐 갑니다. 이들의 신세타령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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