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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상

sky_lover_ 2013. 7. 6. 07:40

-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과 좌상

립중앙박물관 불상실에서 금빛 찬란한 불상 2구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모두 순금으로 된 불상입니다.

경주 낭산(狼山) 동북쪽 기슭의 구황동에 황복사터로 알려진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 삼층석탑이 하나 있는데, 구황동 삼층석탑 또는 황복사터 삼층석탑으로 불립니다. 1942년 이 탑을 해체 복원할 때 탑의 사리함 속에서 금제 불상 2구가 나왔습니다. 하나는 입상이었고, 다른 하나는 좌상이었습니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금빛 찬란한 불상 2구가 바로 이 불상입니다.

-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먼저 입상은 얼굴이 신체에 비해 크고, 민머리에 고졸한 미소를 머금었습니다. 오른손은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있고, 왼손은 허리 높이에서 옷자락 끝을 살짝 쥐었습니다. 법의는 통견입니다. 옷 주름이 앞면에서 U자형으로 나 있고 좌우로 약간 퍼진 고식입니다.

광배는
보주형 두광으로 되어 있습니다. 원형의 연꽃무늬를 중심으로 빛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그 주위를 불꽃무늬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단층의 대좌는 납작하여 안정감이 있습니다.

-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

좌상은 양쪽 뺨이 통통하여 얼굴이 둥근 편이며, 눈·코·입이 뚜렷합니다. 약간의 미소를 띠고 있으나, 입상보다는 더 위엄이 있어 보입니다. 오른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였고, 왼손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에서처럼 왼쪽 손바닥을 무릎 위에 놓고 있습니다. 자세는 옷 주름이 대좌를 덮은 상현좌(裳懸座)를 하였습니다.

법의는 통견입니다. 앞가슴을 많이 드러내고 있으며, 그 속에 대각선으로 걸쳐 입은 내의가 드러나 있습니다.
양다리 위로 옷 주름이 덮여 있어 신체의 윤곽이 잘 보이지는 않으나, 양 무릎에서는 팽팽한 옷 주름이 강조되었습니다.

광배는 두광과 신광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두광에는 가운데 연꽃무늬를 중심으로 넝쿨무늬와 불꽃무늬가 둘러싸고 있고, 신광에는 넝쿨무늬 주위를 다시 넝쿨무늬와 불꽃무늬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

좌상의 대좌는
상·중·하대로 되어 있습니다. 상대에서는 연꽃잎이 위로, 하대에서는 연꽃잎이 아래로 향했으며, 둥근 모양의 중대가 상대와 하대를 이어주고 있습니다.

이들 불상이 들어 있었던 사리함의 뚜껑에 명문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명문에 신라 효소왕 1년(692년)에 탑이 세워졌고, 그 후 706년에 성덕왕이 6치(寸) 크기의 순금으로 된 아미타상 1구와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및 불사리 4과를 탑의 둘째 층에 안치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아미타상은 두 불상 가운데 어느 불상을 말하는 걸까요?

두 불상 가운데 입상이 좌상보다는 더 고식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692년 탑 건립 때는 입상이 봉안되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706년에 봉안된 아미타상은 좌상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좌상의 크기가 12.2cm로 4치 남짓밖에 되질 않습니다. 6치에 한참 모자랍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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