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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함안 채미정

sky_lover_ 2013. 4. 9. 12:27

- 함안 채미정

안 군북은 물이 남에서 북으로 흐릅니다. 이른바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남고북저(南高北低)'의 땅입니다.

그래서인지 북쪽의 낮은 지형에는 산이란 이름을 즐겨 붙였는데, 죽산(竹山)마을이란 이름도 그렇게 생겨났습니다. 한편 남쪽에 있는 산을 '낮아서 배가 넘어간다'는 뜻의 여항산(艅航山)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것은 높은 지세는 낮은 이름으로, 낮은 지세는 높은 이름으로 다스리려 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 있는 원북(院北)마을에 채미정(菜薇亭)이 있습니다.

- 채미정

채미정은 조선 초 생육신의 한 사람인 어계(漁溪) 조려(趙旅, 1420~1489)를 기려 세웠습니다.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 서산서원
(西山書院)이 훼철되면서 부속정자였던 채미정만 홀로 남았는데, 이 또한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습니다. 지금의 건물은 1954년에 재건한 것입니다.

어계 조려는 단종 원년(1453년)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고 있을 때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자 절의를 지키기 위해 이곳 함안으로 물러나 죽을 때까지 낚시와 소요로 은거하며 단종을 연모하였습니다.
 

- 채미정

채미정은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이루어진 팔작지붕집입니다. 정면 2칸 측면 1칸의 방이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는 모두 툇마루로 되어 있습니다.

채미정 겹처마 팔작지붕의 처마 밑에는 '百世淸風(백세청풍)'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어계 조려의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정신, 즉 그의 곧고 맑은 충정을 보는 듯합니다.

- 채미정

채미정이란 이름은 주나라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서 고사리만 캐 먹으면서 살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원래는 (지금은 없어진) 솟을삼문을 지나 작은 연당을 건너 채미정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바로 앞쪽에 기찻길이 나면서 정자를 둘러싼 담장 왼쪽에 만든 작은 쪽문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채미정

지금의 채미정은 쓸쓸하기만 합니다. 가을이면 앞뜰을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였던 은행나무도 고사하여 잘려나가 이제 밑동만 남았습니다.


- 청풍대와 문풍루

채미정 바로 옆에는 청풍대(淸風臺)라는 언덕이 있습니다.

이곳에선 백이산과 숙제봉이 나란히 바라보입니다. 단종 복위 후 숙종이 글을 내려 이 산을 백이산(伯夷山)이라 이름 하자, 그 옆에 있는 봉우리를 숙제봉(叔齊峯)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문풍루(聞風樓)라는 육각정이 있습니다. 그 이름처럼 더운 여름날 이곳에 앉아 있으면 한줄기 청아한 바람이 온몸에 젖은 땀을 말끔히 씻어내어 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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