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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덕사지 전경
부산
금정산 줄기인 상학산(上鶴山) 기슭에 절터 하나가 있습니다.
이 절터는 고려 초기부터 말기까지
존속했던 만덕사(萬德寺)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이 절터로
만덕 제1터널을 통과하는 도로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탓도 있지만,
이 때문에 옛 모습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 만덕사지 석축
이
절터에는 금당터로 추정되는 건물터를 중심으로 웅장한 석축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이곳으로부터 남서쪽으로 200m쯤 떨어진 시냇가에 당간지주 한쪽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들은 한때 이곳에 있었던 절의
규모를 그나마 엿볼 수 있는 몇 안 남은 흔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만덕사
지금 이곳에는 만덕사란 작고 초라한 절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절은 고려시대의 옛 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이 절터의 절이 언제 세워졌고, 또 언제 없어졌는지를 알 수 있는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고려사>에 나오는 충혜왕(忠惠王, 1315~1344년)의 서자 왕석기(王釋器, ?∼1375년)가 공민왕 때 유폐된 만덕사로
알려졌습니다.
- 만덕사지
삼층석탑
이곳 절터에 삼층석탑이 있었습니다. 이 탑은 1979년 부산시립박물관으로 옮겨져 지금 그곳 앞뜰에
복원 전시되어
있습니다. 탑은 각 층
몸체가 적당한 비례로 줄었는데, 전체적으로 아름다우면서도 안정감이
있습니다.
- 기와 조각들
절터 한쪽에 기왓조각 등을 쌓아 놓은
곳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곳 절터에서 나온 것들을 모아놓은 것이겠지요.
고려시대에 만덕사라는 이름을 가진
절이 다섯 군데 있었다고 합니다. 1996년 11월 만덕사지 2차 발굴 때 금당터 부근에서 치미가 발굴되었습니다. 이 치미는 고려시대 왕궁에서
사용된 것과 같다고 합니다. 이것은 앞서 말한 석기 왕자가 유폐된 만덕사가 바로 이곳에 있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만덕사지 석축
그렇지만 이곳 절터가 과연 만덕사터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려 있습니다. 특히 1990년
부산시립박물관에서 이곳 금당터로 추정되는 곳을 발굴한 결과 다양한 고려시대의 유물과 함께 '기비사'(祇毗寺)란 명문이 적힌 기와가
출토되었습니다. 이를 근거로 이곳이 기비사터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비사란 절 이름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된
금산사향완(金山寺香垸)의 명문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이 명문에 "대정(大定) 18년 무술년(戊戌年:명종
8년, 1178년) 5월 날에 금산사(金山寺) 대전(大殿) 미륵불(彌勒佛) 앞에 청동향완(靑銅香垸) 1좌(座)를 만들었다. … 동량(棟梁) 기비사(祗毗寺) 주지(住持)인 삼중대사(三重大師)
혜거(惠琚) …"라는 구절에 나옵니다.
그리고 1530년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동래현조를 보면, 지금의
만덕고개를 기비현(其比峴)이라 하였습니다. 비록 한자는 다르지만, 음이 같으므로 서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 만덕사지 위치평면도
지금까지 발굴조사
결과 이 절터는 그 규모가 범어사보다 컸다고 합니다. 그리고 첫 건립부터 폐사될
때까지 여러 차례의 증축과 개축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과연 이제껏 알려진 대로 고려시대의
만덕사가 있었던 절터일까요? 아니면 기비사가 있었던 절터일까요?
앞으로 절터의 성격과 전체 규모 등을 좀 더 자세히 조사 검토해보면 그 답을 알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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