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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영천 강호정

sky_lover_ 2024. 11. 9. 08:15

- 강호정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꼬깔산(736m)이 남쪽으로 뻗어내려 형성된 산기슭에 성곡리 문화재 이주단지가 있습니다. 곳은 1970년대 영천댐이 건설되면서 수몰 지역에 있던 문화재급 가옥들을 옮겨와 만들어졌습니다.

 

성곡리 바로 동쪽에 용산리(龍山里)가 있습니다. 용산리는 영천댐 건설로 원각(元覺) 마을을 제외한 모든 마을이 수몰되었습니다. 수몰 전 용산리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오천 정씨(烏川鄭氏)와 벽진 이씨(碧珍李氏)가 많았습니다.

 

용산리 수몰 지역에 있던 강호정(江湖亭), 삼휴고택(三休古宅), 오회당(五懷堂), 사의당(四宜堂), 수의헌(守宜軒), 삼휴정(三休亭)이 성곡리 문화재 이주단지로 옮겨졌습니다. 이들 건물은 오천 정씨(烏川鄭氏) 문중의 정자와 종택입니다.

 

- 강호정

 

성곡리 문화재 이주단지의 가장 남쪽에 강호정(江湖亭)이 있습니다.

 

- 강호정

 

강호정은 남동쪽을 향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출입문은 일각문(一脚門)으로, 북동쪽에 있습니다.

 

- 강호정

 

강호정은 원래는 자호천(紫湖川) 자호(紫湖)의 자연대(紫淵臺) 위에 있었는데, 영천댐 건설로 1977년 3월에 지금 장소로 옮겨졌습니다.

 

호수(湖叟) 정세아(鄭世雅, 1535~1612)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임진왜란 끝난 후 그는 선조 32년(1599년)에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자호정사(紫湖精舍)를 세웠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자호정사는 무너져 터만 남았습니다. 이에 후손들이 정조 14년(1790년)에 터에 다시 세워 강호정이라 하였습니다.

 

강호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홑처마 맞배지붕으로 누각형 건물입니다. 중앙이 대청이며, 좌우 협칸이 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앞면에 퇴를 두어 마루를 넓게 쓰도록 하였습니다.

 

- 강호정 편액

 

건물 전면에 '강호정(江湖亭)'이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호수 정세아는 만년에 영천 대전동(大田洞)에 있는 종택을 왕래하면서 용산(龍山)에 오면 주변 경관을 사랑하여 자호정사에 기거했다고 합니다.

 

- 자호정사 편액

 

건물 안쪽 벽에 '자호정사(紫湖精舍)'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자호정사'는 강호정의 원래 이름입니다.

 

- 강호정에서 바라본 전경

 

강호정 내에는 '자호정사' 편액과 호수 정세아가 지은 '원운(原韻)' 시를 비롯한 15편의 제영(題詠)이 걸려 있습니다. '원운' 시 첫 구절에 백암산(柏巖山)이 마주 보는 자호천(紫湖川) 주변 경치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원운(原韻)  - 호수(湖叟)

온 산에 둘러싸인 한 시냇가에  / 萬山環抱一溪頭
두어 가지 소나무 처마는 여름에도 가을 같네.  / 數架松簷夏似秋
사물을 바라보며 한가히 시를 지어 읊조리니  / 觀物愛吟閒裡句
어려웠던 시절의 걱정일랑 취중에 잊어보세.  / 傷時難遣醉中愁

하찮은 이내 생애 구름 따라 떨어지고  / 生涯草草隨雲冷

가벼운 이 한 몸은 물을 따라 흘러가네.  / 鄙吝輕輕逐水流
나물밥과 거친 음식이 배를 채워 주니  / 蔬食只能供我飽
다시는 걱정 없이 생사를 자연에 맡기리라.  / 更無思慮任浮休

 

소재지: 경북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660-4.

 

(202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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