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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곡리 느티나무
의령군 지정면(芝正面) 두곡리(杜谷里)는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기강(岐江)에서 시작된 깊은 골짜기에 있습니다. 이곳에 두곡(斗谷), 관동(冠洞) 마을이 있습니다.
이곳의 전래 지명은 '듬실'입니다. 한자로는 '두곡(杜谷)'이라 적는데, 이는 마을이 두곡산(杜谷山) 아래에 있기 때문에 부르는 이름입니다. 막을 '두(杜)', 골짜기 '곡(谷)'을 쓰는 '두곡(斗谷)'은 넓은 의미의 '듬실' 훈차자(訓借字)입니다. '두곡(斗谷)'을 '산과 바위로 막힌 골짜기'라는 뜻으로 썼을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는 현재 두곡리(杜谷里)의 지형(地形)과 일치합니다.
한편 두곡리의 지형(地形)이 산줄기와 평지가 톱날처럼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한자로 보면 들 '입(入)'자의 연속인 것 같았기 때문에 '입곡(入谷)'이라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 두곡 마을 담벼락의 벽화
두곡리 두곡 마을의 담벼락에 한글학자이자 정치가인 이극로(李克魯, 1893~1978)를 그린 벽화가 있습니다. 이곳은 그의 출생지입니다. 그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해방 후 월북하여 북한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어사전 편찬 집행위원, 한글맞춤법 제정위원, 조선어 표준어 사정위원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1942년 10월 1일 '조선어학회사건'으로 검거되어 징역 6년을 선고받고 함흥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45년 광복을 맞아 풀려났습니다. 1946년 건민회(建民會) 위원장을 지냈고, 1948년 4월 남북 제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참석차 평양에 갔다가 잔류하여 북한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그는 북한에서 1948년 무임소상(無任所相), 1949년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 중앙위원회 의장 및 과학원 후보원사, 1953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1962년 과학원 조선어 및 조선문학 연구소장, 1966년 조국전선 중앙위 의장, 1970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및 박사, 1972년 양강도 인민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습니다.
- 두곡리 느티나무
두곡 마을 노인당 옆에 노거수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 두곡리 느티나무
노거수 느티나무는 두곡리 느티나무입니다.
- 두곡리 느티나무
느티나무의 우람한 밑동은 나무의 오랜 나이를 말해줍니다.
- 두곡리 느티나무
수령: 약 400년. 높이: 25m. 가슴높이 둘레: 5.7m
소재지: 의령군 지정면 두곡리 650.
(202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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