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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부산 장안사

sky_lover_ 2022. 12. 29. 08:04

- 장안사

 

부산 장안사(長安寺)는 유서 깊은 절입니다. 장안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 시대인 673년(문무왕 13년)에 원효(元曉)가 척판암(擲板庵)과 함께 창건했다는 <송고승전(宋高僧傳)>의 기록이 전합니다. 처음에는 쌍계사(雙溪寺)로 불리다가 809년(애장왕 10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기장현 읍지(機張縣邑誌)>에는 선여사, 취정사, 안적사, 장안사 등을 원효가 창건한 4대 사찰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효는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는 씨앗, 즉 여래장(如來藏) 사상을 가지고 불교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장안사는 원효의 이러한 실천행을 설명하는 중요한 사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장안사는 임진왜란 때 전각이 소실되었다가 1631년(인조 9년)과 1638년(인조 16년)에 의월 대사와 태의 대사가 각각 중창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1948년에는 각현(覺玄)이 큰 규모로 중수하였습니다.

 

- 대웅전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집입니다.

 

673년에 원효에 의해 장안사의 전신인 쌍계사가 창건되면서 대웅전도 동시에 건립된 듯합니다. 이후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1658년(효종 9년)에 박수(朴秀), 김억문(金億文), 최춘매(崔春梅) 등 72명이 시주하고, 승려 원정(元正), 선학(禪學), 학능(學能), 충묵(冲黙) 등이 중수 불사를 맡아 중건되었습니다.

 

1660년(현종 1년) 김방한(金邦翰)이 지은 <장안사 대웅전기(長安寺大雄殿記)>와 2009년 6~7월에 조사된 <순치 13년 종도리 묵서명(順治十三年記宗道里墨書銘)>에 1657년(효종 8년) 2월 4일에 불사를 시작하여 5월 12일에 기둥을 세우고, 6월 7일에 들보를 올리는 상량을 하였으며, 1658년에 완성하였다고 합니다.

 

- 석가여래삼존불좌상

 

대웅전 석가여래삼존불좌상입니다. 본존불은 석가여래불이고, 협시불은 약사여래불과 아미타여래불입니다.

 

삼존불은 모두 손 모양이 조금씩 다릅니다. 석가여래불은 오른손의 손끝이 땅을 향하고 왼손은 무릎 위에 올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였습니다. 양 협시불은 아미타인을 하였는데, 약사여래불은 오른손은 무릎 위에 두고 왼손은 무릎 약간 위에 두었고, 아미타여래불은 오른손은 가슴 위로 올리고 왼손은 무릎 위에 두었습니다.

- 석가여래불좌상, 1659년, 돌, 높이 125.5cm 무릎폭 86cm

 

석가여래불좌상입니다.

 

석가여래불좌상은 방형 얼굴에 양 귀가 두툼하고, 눈이 크고 눈꺼풀이 볼록하며, 코가 오뚝합니다. 다소 이국적인 느낌이 듭니다. 법의는 두껍고 옷 주름이 간결하여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 줍니다.

 

- 석가여래삼존불좌상


조선 후기 석조 불상은 불신과 손이 일체로 되어 있는 경우 많습니다. 그러나 대웅전 석가여래삼불좌상은 세 존상 모두 손을 별도로 제작하여 끼워 넣었을 뿐만 아니라 손 모양을 달리하였다는 점에서 독창적입니다.

 

조성 발원문에 따르면, 대웅전 석가여래삼존불좌상은 1659년(효종 10년)에 대화원(大畵圓) 녹원(鹿元)과 편수(片手)인 명준(明俊), 학륜(學崙), 각인(覺仁)이 제작하였으며, 42년이 지난 1701년(숙종 27년)에 금문(金文), 세균(世均) 등의 조각승에 의해 중수되었다고 합니다.

 

- 영산회상도, 1856년, 삼베, 396.5×305cm (사진 출처: 한국의 사찰문화재)

 

대웅전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입니다.

 

영산회상도는 석가여래가 영산에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설법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대웅전 영산회상도는 장방형의 대형 화면에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협시보살과 사천왕을, 뒤쪽으로 여섯 제자와 타방불(他方佛) 2위, 팔부신장 4위를 나누어 배치하였습니다.

이 영산회상도는 전통적인 녹색과 적색을 주로 하고 부드러운 황토색을 넓게 채색하여 자연스러운 느낌을 줍니다. 인물들의 비례도 조화로우며 섬세한 필선과 부드러운 채색이 마치 18세기 불화를 보는 듯합니다. 특히 화면 한가운데 팔각형의 큰 대좌를 그리고, 그 위에 본존을 배치하여, 예배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주었습니다.

 

대웅전 영산회상도는 금어(金魚) 금암(錦庵) 천여(天如, 1794~1878)를 비롯하여 6명의 화승이 참여하여 1856년(철종 7년)에 제작되었습니다.

 

- 응진전

 

응진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집입니다.

응진전 내에는 석가여래불, 제화갈라보살, 미륵보살 등 삼존불(三尊佛)을 중심으로 하여 좌우로 십육 나한상(十六羅漢像)과 사자상(使者像), 범천의(梵天倚), 인왕상(仁王像)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삼존불의 뒤쪽에 영산회상도가 있습니다.

응진전은 조선 후기에 건립되었습니다. 1899년(고종 36년) 3월 18일에 기둥을 세우고, 같은 달 19일에 상량하였습니다.

 

- 석가여래불좌상, 1684년, 돌, 높이 66.3cm 무릎폭 53.8cm

 

응진전 석가여래삼존불본존불인 석가여래불과 협시불인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입니다.

 

석가여래불좌상은 몸집에 비해 머리가 크고 하체에 비해 상체가 다소 빈약한 느낌을 줍니다. 머리에 정상 계주와 중앙 계주를 표현한 점, 비교적 짧은 목과 좁은 어깨를 한 점, 신체를 밋밋하게 표현한 점 등은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 십육 나한상

 

응진전 십육 나한상은 16명의 나한 각각의 개성을 독특한 자세와 표정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응진전 석가여래삼존불좌상과 십육 나한상은 1684년(숙종 10년)에 양공(良工) 승호(勝湖), 희연(熙衍), 천휘(天輝), 천담(天潭), 법자(法孖), 법종(法宗), 수종(守宗), 허예(虛艺), 도신(道信)의 9명이 관여하여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 영산회상도, 1882년, 비단, 151×168cm (사진 출처: 한국의 사찰문화재)

 

응진전 영산회상도입니다.

 

응진전 영산회상도는 화면의 전체를 붉은색으로 칠한 뒤 흰색과 황색 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인물의 얼굴과 대좌 일부분만을 채색한 소위 홍탱(紅幀)입니다. 화면의 구성을 보면, 석가모니와 18명의 제자만을 간단하게 묘사하였습니다. 본존 석가모니불 좌·우측의의 아난과 가섭을 비롯한 십육 나한상의 안면은 음영법을 사용하여 개성 있고 역동적인 표정이 드러나며, 자유로운 몸짓이 인상적입니다.

 

화기(畵記)에 따르면, 화승 수룡(繡龍) 기전(琪銓)과 관허(貫虛) 의관(宜官)의 지휘 아래 1882년(고종 19년)에 조성되었습니다. 기전과 의관은 해인사 화승으로 활약한 승려입니다.

 

- 명부전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집입니다.

 

명부전은 임진왜란 피해를 복구하던 1600년대 중반에 건립한 후 1744년(영조 20년)에 대웅전의 서까래를 수리하면서 명부전도 중건하였다고 합니다.

 

명부전 내에는 지장보살좌상을 중심으로 좌우로 도명존자상(道明尊者像)과 무독귀왕상(無毒鬼王), 그리고 시왕상(十王像) 10구와 함께 귀왕상(鬼王像), 판관상(判官像), 사자상(使者像), 동자상(童子像), 인왕상(仁王像)이 좌우로 각 1구씩 배치되어 있습니다. 지장보살삼존상 뒤쪽에 지장보살도가 있습니다.

 

- 지장보살좌상, 1684년, 돌, 높이 102.5cm 무릎폭 78cm

 

지장보살상입니다.

 

민머리에 오른손은 손끝이 땅을 향하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해 엄지와 중지를 맞댄 채 무릎에 두었습니다. 머리는 녹색과 흑색으로 채색하였고, 장방형의 큰 얼굴은 넓은 이마, 좌우로 긴 눈, 큼직한 코,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얇고 다부진 입의 표현으로 부드럽고 자비로운 인상입니다. 착의법은 편삼 위에 대의를 두른 변형통견식이며, 가슴 위로 꽃잎형으로 접힌 승각기가 있습니다.

 

- 지장보살삼존상

 

지장보살상의 협시상은 도명존자상와 무독귀왕상입니다.

 

이들 협시상은 입상으로, 지장보살상과 같은 신체 비례에 좁은 어깨와 얼굴 모습이 닮았습니다. 도명존자상은 민머리에 붉은색 가사와 청색 장삼을 입고 합장하고 있으며, 무독귀왕상은 머리에 원류관을 쓰고 양손을 배 앞에 가지런히 모으고 홀을 쥐고 있습니다.

 

- 시왕상

 

명부전 시왕상(十王像)은 다채로운 표정과 자세로 앉아 있습니다. 양손을 모으고 있거나 한 손으로 수염을 쥐거나 경책을 받쳐 든 모습입니다.

조성발원문에 따르면, 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은 1684년(숙종 10년) 6월에 수조각승(首彫刻僧) 승호(勝浩)와 함께 희연(熙衍), 천휘(天輝), 천택(天澤), 법능(法能), 법종(法宗), 수종(守宗), 처흘(處屹), 도신(道信) 등이 참여하여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지장보살도, 1856년, 면, 185×218.7cm (사진 출처: 한국의 사찰문화재)

 

명부전 지장보살도입니다.

 

명부전 지장보살도는 비단 바탕에 다양한 색채로 그려졌습니다. 지장보살을 중앙에 배치하고 위쪽에는 4위의 보살이 좌우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아래쪽에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을 두어 지장삼존(地藏三尊)을 이루고 있으며, 좌우에 사천왕(四天王)을 배치하였습니다.

 

이 지장보살도는 1856년(철종 7년)에 제작되었습니다. 대웅전 영산회상도와 동시에 제작된 것으로, 19세기 전라도에서 활동한 금암(錦庵) 천여(天如)를 비롯한 6명의 화승이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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