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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문사지 일대

 

경주 동쪽 관문에 해당하는 명활산(明活山)과 낭산(狼山) 사이에 보문들이라고 하는 너른 들이 있습니다. 이 들의 동쪽에 절터가 있습니다. 절터 부근에서 '보문'(普門)라고 쓰인 기왓조각이 발견되어 보문사지(普門寺址)추정될 뿐 이곳 절에 대한 기록은 따로 전하지 않습니다.

이곳 절터를 찾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절터를 안내하는 표지판도 없을뿐더러 절터의 유물들도 들판 곳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나마 추수 후에는 어림짐작으로나마 찾아갈 수 있으나, 벼들이 한창 자라는 농사철에는 유물들이 있는 곳을 가늠하기 어렵고, 설혹 있는 곳을 알아도 가까이 다가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곳 절터를 찾아가는 것은 가을걷이가 모두 끝난 겨울철이 좋습니다. 비록 황량한 들판에 차가운 바람만 불어대지만, 사방을 둘러보면 진평왕릉과 황복사지 삼층석탑, 그리고 선덕여왕이 잠들어 있는 낭산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어 쓸쓸함과 허전함을 잊을 수 있습니다.

 

- 보문동 연화문 당간지주

 

진평왕릉 남쪽 보문들에 아름다운 당간지주가 있습니다. 보문동 연화문 당간지주입니다.

 

- 보문동 연화문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높이는 1.46m로, 통일신라 시대의 것입니다. 처음부터 지금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보문동 연화문 당간지주 

 

당간지주 정상 부분의 안쪽에 당간을 고정한 큼직한 간구(杆溝)가 있습니다. 당간지주의 아랫부분은 땅속에 묻혀 있습니다. 따라서 간대(竿臺)나 기단의 유무와 같은 하부 구조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 보문동 연화문 당간지주

 

당간지주의 옆면 모습입니다.

 

- 부분

 

위쪽 옆면에 여덟 잎의 연꽃 한 송이가 새겨져 있습니다. 연밥까지 보이는 연꽃입니다. 이와 같은 연꽃무늬를 새겨 장식한 당간지주는 이곳 외에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 보문동 연화문 당간지주

 

보문동 연화문 당간지주는 보문사지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게다가 보문사지에는 당간지주가 있습니다. 이 당간지주는 보문사가 아닌 다른 절의 당간지주가 아닌가 싶습니다.

 

- 까마귀 떼

 

보문동 연화문 당간지주를 떠나 보문사지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하늘에는 까마귀 떼가 멋진 군무를 펼칩니다.

 

- 보문사지 석조

 

보문사지 석조입니다.

 

석조는 커다란 화강암 덩어리를 직접 깎아내어 만들었습니다. 안팎으로 별다른 장식이 없이 단순하고 소박한 모습입니다. 수조 바닥의 가장자리에 배수용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 보문사지 석조

 

지금도 여러 절에서 이러한 석조를 급수 용기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석조도 당시에 급수 용기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석조는 단순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비교적 크고, 장중한 느낌을 줍니다. 보문사지에 있는 대부분의 유물이 통일신라 시대의 것이므로, 이 석조도 그 규모나 다듬은 솜씨를 볼 때 그 당시의 것으로 보입니다.

 

- 초석

 

이곳 절터를 그냥 지나치지만 않으면... 논둑길 여기저기에 초석과 같은 석재가 드문드문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보문사지

 

지금 보문사지에는 석조 외에도 금당지, 목탑지, 석등 하대석, 당간지주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절터 대부분은 논으로 변했습니다.

 

- 보문사지

 

금당지 앞쪽에 양측으로 목탑지가 있습니다. 보문사는 쌍탑일금당식(雙塔一金堂式) 가람 배치를 하였습니다. 양 목탑지 사이에 석등 하대석으로 보이는 석재가 있습니다.

 

- 서탑지 심초석

 

서탑지 중앙에 커다란 심초석이 있습니다. 심초석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 금당지

 

금당지에는 흙으로 쌓은 축대 위에 건물 기단석과 초석이 있습니다.

 

보문사(普門寺)의 창건 시기에 대한 기록은 전하지 않습니다. 보문사에 대한 유일한 기록은 신라 경문왕 11년(871년) 8월 12일에 황룡사 구층목탑을 중수하면서 매납하였던 황룡사 구층목탑 찰주본기(皇龍寺九層木塔刹柱本記)에 있습니다. 이 찰주본기에 의하면, 보문사의 상좌승(上座僧) 은전(隱田)이 도감전(道監典: 탑 불사에 관여한 승려)으로 대탑불사(大塔佛事)에 참여하였다고 합니다.

 

보문사의 상좌승 은전이 황룡사 목탑의 대탑불사에 도감전 15명 중 6번째로 참여하였으니, 적어도 그 당시의 보문사는 사세(寺勢)가 번창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 석재

 

금당지 축대 앞에 석재 하나가 비스듬히 땅에 박혀 있습니다. 석재 윗면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보아 무언가를 꽂았던 받침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 석재

 

석재 옆면에 안상무늬과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범상치 않아 보이는 이 석재는 어디에 사용되었던 걸까요?

 

- 금당지

 

금당지 모습입니다. 이곳에 모셨던 부처님은 사라졌고, 무덤 하나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습니다.

 

- 나비장 모양의 쐐기 홈

 

고막이 돌에는 서로를 단단히 연결하는 나비장 모양의 쐐기 홈이 있습니다. 이 쐐기 홈은 꽃도 피지도 않은 때에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나비를 떠올리게 합니다.

 

- 금당지

 

거칠게 다듬은 건물 초석들은 열을 맞추어 나란히 늘어서 있습니다.

 

- 금당지에서 바라본 당간지주

 

금당지에서 당간지주를 바라봅니다. 그곳까지는 꽤 먼 거리입니다. 이것만으로도 번창했을 당시 절의 모습이 짐작됩니다.

 

- 보문사지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절터 서쪽에 있습니다. 별다른 장식이 없는 당간지주는 바깥쪽 면 양변의 모(角)를 죽인 것이 장식이라면 장식일 수 있습니다.

 

- 보문사지 당간지주

 

북쪽 당간지주는 상부가 절단되었고, 남쪽 당간지주는 비교적 완전합니다.

 

당간지주를 바깥쪽에서 바라보면 상하가 잘 조화되어 안정감을 주면서 가늘고 긴 모습으로 보입니다. 당간지주 아래쪽에 원래는 당간지주를 받치고 있던 기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당간지주 사이에 장방형 대석(臺石)만 있습니다.

 

- 간공

 

당간지주에는 당간을 고정하기 위한 간공(杆孔)을 상 중 하로 3개를 두었습니다. 그런데 간공의 형태가 남쪽 당간지주와 북쪽 당간지주가 같지 않습니다.

 

남쪽 당간지주에는 관통된 간공이 3개 있습니다. 그러나 북쪽 당간지주는 남쪽 당간지주의 간공과 상대되는 위치에 간공이 있으나, 안쪽에만 홈이 파여 있고 바깥쪽은 막혀 있습니다.

 

- 보문사지 당간지주

 

보문사지 당간지주는 전체적인 형태가 장대하고 소박합니다. 그리고 한쪽 당간지주에만 관통된 간공이 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이것은 당대의 당간지주로서는 드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보문들

 

당간지주에서 바라보는 보문들은 적막합니다. 멀리 경주 시내와 낭산 아래의 황복사지 삼층석탑이 어슴푸레하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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