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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남원 여원치 마애불

sky_lover_ 2021. 2. 16. 12:44

- 여원치 마애불

 

남원(南原)에서 운봉(雲峰) 쪽으로 가다 보면 고남산(古南山, 846m)이 있습니다. 이곳 주민들은 고남산을 태조봉이라 합니다. 그 연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려말 우왕 6년(1380년)에 인월면 인월리에 진을 치고 왜구 2천여 명을 이끄는 왜장 아지발도에 맞서기 위하여 한양에서 출발하여 남원에 도착한 이성계가 운봉 쪽을 바라보니 고남산이 유난히 뾰족하여 이곳에 올라 성을 쌓고 산신제를 올려 승리를 기원하였습니다. 이성계는 황산(荒山)에서 대승을 거두고 왜장 아지발도를 무찔렀습니다. 그 후 이성계가 조선을 세운 뒤 태조봉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 여원치 마애불

 

도로 사정이 지금과 같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 남원과 운봉, 함양을 왕래할 때 고남산을 가로지르는 고개인 여원치(女院峙)를 넘어가야 했습니다. 여원치 정상 부근의 24번 국도변 바위벽에 마애불이 새겨져 있습니다.

 

여원치 마애불입니다.

 

- 여원치 마애불

 

여원치 마애불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합니다.

 

고려 말 왜구가 침입하여 약탈을 일삼자 조정에서는 이성계를 삼도 순찰사로 임명하여 남원 지역의 왜구를 정벌하도록 급파하였습니다. 이성계는 인월역에 주둔하고 있던 왜구 잔당들을 무찌르기 위하여 남원을 거쳐 운봉을 향하여 진군하던 도중 아흔아홉 구비의 여원치 험준한 고개를 넘고 있었습니다.

 

이성계가 지휘하는 부대가 고개 정상에 이르렀을 무렵 갑자기 안개가 자욱하여 시야를 가리더니 비몽사몽간에 노파가 나타나 왜구와 싸울 시기와 장소, 전략을 일러 준 후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이 노파는 당시 여원치의 한 주막의 주모였다고 합니다. 남원을 향하던 왜구가 주막에 주둔하는 동안 여인의 젖가슴을 만지며 희롱하였습니다. 수모를 당한 여인은 비분강개하여 부엌칼로 자신의 젖가슴을 도려내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여인의 원혼이 노파로 변신하여 자신의 원수를 갚고자 이성계 앞에 나타나 왜구를 격파할 전략을 일러 주었습니다.

 

황산대첩이 승리로 끝난 후 원통하게 죽은 여인의 혼을 달래기 위해 노파를 만났던 여원치 바위벽에 오른쪽 젖가슴이 잘린 여상(女像)을 새겼습니다. 이 여상이 바로 여원치 마애불이라고 합니다.

 

- 돌기둥

 

마애불 앞쪽에 두 개의 돌기둥이 있습니다. 예전에 있었다는 보호각의 흔적입니다.

 

- 마애불에 대한 명문

 

마애불 옆 한쪽 바위 면에 비 형태의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고종 38년(1901년)에 운봉 현감이었던 박귀진(朴貴鎭)이 새긴 것입니다. 여기에는 태조 이성계와 마애불에 관련된 인연설화가 적혀 있습니다.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 지리산 도고(道姑) 할미의 도움으로 왜군과의 황산대첩에서 크게 승리했고, 도고 할미에 대한 고마움을 기리기 위해 마애불이 만들어졌다는 내용입니다. 이곳에 전하는 이야기와 얼추 비슷한 내용입니다.

 

- 여원치 마애불

 

마애불은 높이는 2.5m, 어깨너비는 1.09m입니다. 조성 시기는 고려 시대로 추정됩니다.

 

대의는 통견입니다. 어깨와 팔뚝은 물론 가슴 아래 복부까지 넓은 U자형 옷 주름이 연속적으로 있습니다.  

 

- 부분

 

육계와 머리는 마멸이 심합니다. 얼굴은 양 뺨에 살이 올라있고, 꼭 다문 두툼한 양 입가에 얕은 미소가 보일 듯 말 듯 합니다. 머리 뒤편으로 3중의 원형 두광이 있습니다.

 

- 부분

 

머리 양옆 쪽에 작은 구멍이 여럿 있습니다. 어떤 목적의 구멍들일까요?

 

- 부분

 

수인은 오른손을 가슴 앞으로 들어 올려 셋째 손가락과 넷째 손가락을 살짝 구부렸습니다.

 

- 여원치 마애불

 

왼손은 팔꿈치 아래가 떨어져 나갔으나, 원래는 아래로 내리뻗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부분

 

자세는 결가부좌 하였습니다. 서툴게 표현된 발바닥이 보입니다.

 

- 여원치 마애불

 

마애불은 얼굴과 상체가 거의 맞붙은 듯한 짧은 목에 어깨가 넓어 전체적으로 강인한 인상을 줍니다. 엄연한 여래좌상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여원치 마애불을 여상(女像)이라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그렇게 보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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