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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창녕 금호재와 이장곤 묘역

sky_lover_ 2021. 1. 14. 07:25

- 금호재

 

창녕 대합면 대동지(大同池) 뒤쪽에 금헌(琴軒) 이장곤(李長坤, 1474~1519)을 모신 재실(齋室)인 금호재(琴湖齋)가 있습니다.

 

금호재는 용흥사(龍興寺)의 부속 건물을 1966년에 이곳으로 옮겨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용흥사가 1695년까지 있었던 것을 고려하여 적어도 17세기 후반의 건물로 보기도 합니다. 연화 무늬의 공포와 망와에 '병오년(丙午年) 9월 11일'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 태화문

 

금호재 솟을대문인 태화문(太華門)이 굳게 닫혀 있습니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없습니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입니다. 양측면의 방은 1칸 온돌방이고, 가운데 2칸은 대청마루로 되어 있습니다.

 

- 사당(제의묘(制義廟))

 

이장곤은 연산군 8년(1502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로 있던 중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거제도로 유배당했습니다. 거기서 함흥으로 도주하여 지내다가 중종반정으로 조정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중종 14년(1519년)에 일어난 기묘사화 때 병조판서로서 영의정 정광필과 함께 추국에 참여하였으나 조광조의 처벌을 반대하여 파직되었습니다. 이후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자연을 즐기다가 창녕에서 삶을 마감했습니다.

 

숙종 21년(1695년)에 이승언(李承彦), 성안의(成安義)와 같이 창녕 연암서원(燕巖書院)에 배향되었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서원이 없어졌습니다.

 

- 이장곤 묘역

 

금호재에서 북동쪽으로 약 500m 떨어진 곳에 이장곤 묘가 있습니다.

- 배치도

 

묘역에는 산 능선부 아래로부터 묘도비 1기, 정경부인 중화양씨의 묘 1기, 이장곤 부부의 묘 2기, 이장곤 둘째 형 이장견(李長堅)의 묘로 추정되는 무덤이 나란히 있습니다. 그리고 망주석 4기, 향로석 2기, 묘비 2기, 석상 2기가 있습니다.

 

- 이장곤 묘도비

 

이장곤 묘도비(墓道碑)는 신도비(神道碑: 죽은 사람의 평생 사적을 기록하여 무덤 앞에 세운 비) 형태의 비석입니다.

비문은 조선 후기 학자인 이상정(李象靖)이 1781년에 지었고, 비문 글씨는 당시 성주목사였던 조윤형(曺允亨)이 썼습니다. 비는 1783년 6월에 세워졌습니다. 비 형태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과 두 마리의 용무늬로 장식된 머릿돌을 갖추고 있습니다.

 

- 머릿돌

 

머릿돌에는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가운데에 놓고 서로 다투는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비신의 전액(篆額)은 '금헌이선생묘도비'(琴軒李先生墓道碑)라고 적혀 있습니다.

 

- 받침돌

 

받침돌은 용머리를 한 거북 모양입니다. 입에 여의주를 물었으나, 생김새가 용이라기보다 호랑이 같습니다.

 

- 이장곤 묘역

 

묘도비에서 올려다본 묘역입니다. 가장 멀리 보이는 무덤이 이장곤 묘입니다.

 

- 정경부인 중화양씨의 묘

 

묘도비 바로 위쪽에 정경부인(貞敬夫人) 중화양씨(中和楊氏)의 묘가 있습니다. 

 

이장곤이 함흥으로 도망쳐 지낼 때 백정 양 씨의 집에 얹혀살게 되었고, 그 집 딸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몇 년 만에 중종의 즉위로 조정으로 돌아온 이장곤은 도망자 생활 동안 동고동락한 아내를 버릴 수 없어 조정에 선처를 부탁하였습니다. 결국 이장곤 덕에 부인 양 씨는 정경부인이 되었고, 친정은 모두 천민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중화양씨는 정경부인이 되었지만 이장곤의 본부인이 아닌 탓에 이장곤과 함께 묻히지 못하고 바로 아래에 홀로 묻혔습니다.

 

- 이장곤 묘로 올라가는 산길

 

중화양씨의 묘를 지나 이장곤 묘로 올라가면서 뒤돌아본 묘역 모습입니다.

 

- 이장곤 부부의 묘

 

이장곤 묘는 본부인 묘와 나란히 있습니다.

 

- 묘비

 

이장곤 묘비입니다.

 

묘비에 '숭정대부 의정부 우찬성 겸 병조판서 지경연사 판의 의금부사 이공양위지묘'(崇政大夫 議政府右贊成 兼 兵曹判書 知經筵事 判義 義禁府事 李公兩位之墓)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가정십사년을미오월일'(嘉靖十四年乙未五月日)이라고 날짜가 적혀 있어, 이 묘비는 1535년 5월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 향로석

 

무덤 앞에는 예쁜 향로석도 있고...

 

- 망주석

 

잘생긴 망주석도 있습니다. 

 

- 이장곤 부부의 묘에서 내려다본 묘역

 

이장곤 부부의 묘에서 내려다본 묘역 모습입니다. 아래로 정경부인 중화양씨의 묘와 묘도비가 있습니다.

 

- 석상

 

이장곤 부부의 묘 뒤쪽에 석상 2기 있습니다. 이 석상은 이장곤 부부의 묘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 석상1

 

석상은 철퇴와 같은 무기를 들고 있는 무인석입니다.

 

- 석상1

 

얼굴이 큰 것이 제주도 돌하르방과 비슷합니다.

 

- 석상1

 

뒷모습입니다.

 

- 석상2

 

다른 석상도 생김새가 비슷합니다.

 

- 석상2

 

역시 얼굴이 큰 것이 제주도 돌하르방과 비슷합니다.

 

- 석상

 

두 석상은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 방형묘

 

이장곤 묘역 위쪽에 흔하지 않은 방형묘가 하나 있습니다.

 

- 문인석1

 

방형묘 앞에 양쪽으로 문인석이 하나씩 있습니다.

 

- 문인석2

 

두 문인석은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 방형묘

 

이 무덤은 벽진이씨(碧珍李氏) 문중 선대의 것으로 보이나, 누구의 무덤인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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