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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고개
서피랑은 동피랑만큼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통영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입니다. 피랑은 벼랑이라는 뜻으로, 서쪽에 있는 벼랑이라 해서 서피랑이라 불린다고 합니다. 서문고개에서 시작하여 서포루까지 서피랑을 둘러봅니다.
서문고개는 문화동과 명정동을 경계 짓는 고갯마루입니다. 옛날 통영성(統營城)의 서문(西門)인 금숙문(金肅門)이 있던 곳이라 하여 '서문고개' 또는 '서문 까꾸막'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이곳은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주요 무대입니다.
- 통영갓 장인 김봉주 공방터
서문고개에서 서포루 쪽으로 조금 가다 보면, 통영갓 장인 김봉주 공방터가 있습니다.
- 김봉주 공방터에서 바라본 서포루
이곳에서 서문고개를 등지고 앞을 바라보면 언덕 위에 서포루가 있습니다.
- 박경리 생가
서포루로 가는 도중 서문고개 안쪽 후미진 곳에 박경리 생가가 있습니다.
박경리는 이곳에서 태어나 어머니와 단둘이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버지(박수영)가 새터(지금의 서호시장 일대)에서 통영에 하나뿐인 화물차 차부(車夫)를 하였는데, 젊은 여자 기봉이네와 그곳에서 딴살림을 차렸기 때문입니다.
- 푯말
생가는 평범합니다. 그러나 빨간 벽돌벽에 작은 푯말이 붙어 있습니다. 이 푯말이 없었다면 이곳이 박경리 생가임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 문화배수지
박경리 생가를 지나 서포루로 오르기 전에 문화배수지가 있습니다.
문화배수지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세워진 상수도 시설입니다. 제수변실은 육각형 콘크리트조 건물로, 지붕은 돔형입니다. 배수지 출입문 위쪽에 '천록영창'(天祿永昌)이란 화강석 현판이 있었으나, 2004년 통영 시민단체에 의해 시멘트로 지워졌다고 합니다. '천록영창'은 '하늘로부터 받은 복록이 길이 창대하고 영원하리라'라는 뜻입니다. 이는 배수지에서 집마다 나가는 물의 의미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서포루
서포루에 오르기 전에 올려다본 서포루 모습입니다.
- 서포루
서포루(西鋪樓)는 통영성의 서피랑에 있던 포루입니다.
서피랑은 여황산의 능선이 바다로 흘러내리다 높이 솟구친 언덕배기를 말합니다. 원래 이곳에 있던 서포루가 일제강점기 때 훼철된 것을 복원하였습니다.
- 통영지도(1872년)
1872년에 제작된 통영지도(統營地圖)입니다. 서포루, 북포루, 동포루가 그려져 있습니다.
- 서포루에서 바라본 북포루
서포루에서 여항산 바라보면 정상에 북포루가 있습니다.
- 서포루에서 바라본 세병관
그리고 서포루에서 동북쪽으로 바라보면 세병관이 있습니다.
- 서포루에서 강구안 쪽을 바라본 풍경
서포루에서 강구안 쪽을 바라봅니다.
동피랑(동포루)과 강구안, 그리고 남망산공원이 보입니다. 이 풍경은 이중섭의 그림 하나를 떠올리게 합니다.
- 이중섭, 선착장을 내려다본 풍경, 1953년
그림은 이중섭의 <선착장을 내려다본 풍경>입니다. 서피랑 언덕에서 강구안을 내려다보며 그린 그림입니다.
이중섭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늦은 봄에 염색공예가 유강렬의 권유로 통영에 머물기 시작하여 1954년 봄에 통영을 떠났습니다. 이 시기는 이중섭에게 르네상스와 같습니다. 그는 통영의 아름다운 자연과 풍광 등을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이때 그린 그림이 <흰소> <세병관 풍경> <부부> 등 40여 점에 이릅니다.
그가 통영에 머문 시기는 일본인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 한국 이름: 이남덕(李南德))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내고 나서입니다. 서피랑 언덕에 올라 통영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그는 그 바다 너머 일본으로 떠나보낸 아내와 두 아들을 얼마나 그리워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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