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키진성터 나키진성(今帰仁城)는 나카야마(中山)에 의해 류큐가 통일되기 이전인 삼산정립시대(三山鼎立時代)에 기타야마(北山) 왕이 머물렀던 성입니다. 성내에는 중국, 동남아시아 등의 도자기들이 많이 출토되어 당시 번영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키타야마는 1416년(1422년이라는 설도 있음)에 나카야마 왕(中山()王) 쇼우하시(尚()巴志)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멸망 후에도 성은 계속 사용되었는데, 류큐 왕국에서 파견한 감수(監守)가 1665년까지 머물렀습니다. 1609년에 사쓰마번(薩摩藩)의 류큐 침공 때에는 공격의 첫 번째 목표가 되기도 했습니다. - 나키진성 조감도 나키진성은 외곽을 포함하여 7개의 성곽으로 되어 있으며, 규모는 슈리성과 비슷합니다. 성을 둘러싼 성벽은 지형을 교묘히 이용하여 아름..
- 카츠렌성터 카츠렌성터(勝連城跡)는 나카구스쿠성터(中城城跡)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카츠렌 반도 남쪽 부근의 구릉에 있습니다. 성은 13세기~14세기에 모치즈키아지(茂知附按司)에 의해 축성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마지막 성주(城主)는 아마와리(阿麻和利:?~1458년)입니다. 아마와리는 악정(悪政)을 거듭한 모치즈키아지를 쿠데타를 일으켜 쓰러뜨리고 아지(按司)가 되었습니다. 동아시아와의 무역을 추진하고 대륙의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세력이 커졌으며, 류큐 왕국 쇼우타이큐우왕(尚泰久王)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1458년에 고사마루(護佐丸)가 슈리성 공략을 계획했다는 의심을 한 왕의 명령을 받고 나카구스쿠성을 공격하여 왕에 대한 충성의 증거로 고사마루를 자결시켰습니다. 하지만 아마와리 자신이 슈리..
- 나카구스쿠성터 이번 추석 연휴 때 오키나와를 다녀왔습니다. 그때 오키나와의 성터를 둘러보았습니다. 먼저 나카구스쿠성터(中城城跡)를 찾았습니다. 나카구스쿠성(中城城)은 류큐 왕국(琉球王国)의 쇼우타이큐우왕(尚泰久王: 재위 1453~1460년) 때 고사마루(護佐丸: ?~1458년)의 성(城)으로 알려졌습니다. 성은 당시 무역항이었던 옥의항(屋宜港)으로부터 2km쯤 떨어진 해발 160m의 구릉에 있는 천연의 요새입니다. 이곳 성벽 위에서 서쪽으로 동중국해, 동쪽으로 나카구스크만(태평양)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성이 처음 축성된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14세기 말에 이곳을 지배하던 호족인 사치나카구스쿠아지(先中城按司)가 몇 세대에 걸쳐 남쪽 성곽, 서쪽 성곽, 제1 성곽, 제2 성곽의 주요 부분을 세웠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