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근암고택 앞에서 바라본 양동마을 경주 양동(良洞)마을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이른바 '물(勿)' 자 형국의 명당 터에 있습니다. '물(勿)' 자 형국의 양동마을 안쪽 언덕 위에 근암고택(謹庵古宅)이 있습니다. 이곳은 양동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입니다. - 근암고택 사랑채 근암고택은 태로(台老) 이정수(李鼎壽, 1758~1784)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그의 부인 이 씨가 언덕 아래 평지에 지었던 집입니다. 1880년대에 그의 현손(玄孫)인 근암(謹庵) 이희구(李熙久, 1858~1901)가 옛집을 뜯어서 지금 자리에 옮겨 지으면서 규모를 늘려서 지었습니다. 그리고 집의 이름이 근암고택이 되었습니다. 근암고택은 '一' 자형 문간채가 있고, 그 안쪽에 'ㄱ' 자형 안채와 '一' 자형 사랑채가 있습니다...

- 여강이씨 종가 경주 양동마을에 있는 고택 가운데 눈여겨보아야 할 고택으로 관가정, 향단, 무첨당, 서백당이 있습니다. 이 고택들은 양동마을을 구성하는 경주손씨(慶州孫氏)와 여강이씨(驪江李氏) 가문의 대표적인 건물입니다. 무첨당(無添堂)은 물봉골 남향받이 언덕에 있는 여강이씨 종가 별당입니다. '무첨당'이란 당호는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의 맏손자인 무첨당(無添堂) 이의윤(李宜潤, 1564~1597)의 호에서 따왔습니다. '무첨당'은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한다'는 뜻입니다. 여강이씨 종가의 구성은 크게 살림채인 본채, 별당인 무첨당, 사당으로 되어 있습니다. 본채는 중종 3년(1508년)에 건립되었으며, 무첨당은 회재 이언적이 경상감사로 있었던 중종 35년(1540년)경에 건립..

- 관가정 경주 양동마을 고택은 관념적인 당호(堂號)가 많은 다른 지역 고택과는 달리 당호가 전원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예를 들면, 큰 향나무가 있으면 향단(香檀), 소나무가 있으면 송첨(松簷) 등으로 말입니다. 관가정(觀稼亭)도 예외가 아닙니다. 관가정은 '농사짓는 풍경을 바라보는 정자'라는 뜻입니다. 관가정은 양동마을 초입의 전망 좋은 서향받이 언덕 위에 있습니다. 양동마을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이른바 '물(勿)' 자 형국의 명당 터인데, 그 첫 번째 획이 뻗어 내려오는 지점에 관가정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 건물 배치도 관가정 건물 배치도입니다. 건물은 사랑채, 안채, 행랑채가 'ㅁ'자 형 좌·우측에 날개를 단 형태로 되어 있고, 그 뒤편 동북쪽에 별도로 일곽을 이룬 사당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 송첨종택 경주 양동(良洞)마을은 세조 3년(1457년)에 청송에 살던 손소(孫昭)가 처가가 있는 이곳에 들어와 살면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마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손소의 장인 풍덕 류씨(豊德柳氏) 류복하(柳復河)는 여말선초의 만호(萬戶)로 일대의 수많은 노비와 토지를 소유한 토호(土豪)였습니다. 양동마을 북쪽 언덕에 송첨종택(松簷宗宅)이 있습니다. 송첨종택은 경주 손씨(慶州孫氏)의 큰 종가로, 양동마을에서 시조가 된 손소가 지은 집입니다. 이곳에서 손소의 아들 손중돈(孫仲暾)과 외손 이언적(李彦迪)이 태어났습니다. - 손소 초상화 양민공(襄敏公) 손소(孫昭, 1433∼1484)는 평범한 지방 재산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여 중앙 관직에 나갔고,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