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둔사 삼층석탑과 석불비상금둔사 옛 절터에는 보물 두 점이 숨은 듯이 있습니다. 금둔사 삼층석탑과 석불비상이 그것입니다. 석불비상(石佛碑像)은 삼층석탑 바로 곁에 있습니다. 먼저 석불비상이란 낯선 이름은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네모난 돌에 불상을 조각하고 비문을 새긴 다음 덮개돌로 덮어 마치 비석처럼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러한 형태는 인양사터에 있는 창녕 탑금당 치성문기비 등 전국에 걸쳐 몇 개 남아있지 않은 특이한 형태입니다. - 금둔사 석불비상 이 석불은 보개석(寶蓋石)과 대좌석(臺座石)을 갖추고 있습니다. 긴 네모꼴의 판석 앞면에 불상을 돋을새김하였는데, 마치 커다란 비석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몸체, 보개석, 대좌석이 각각 떨어져 있던 것을 1979년 7월에 지금처럼 복원하였습니..
- 청량사 석조 석가여래좌상 경남 합천 청량사는 말 그대로 맑은 느낌이 가득한 절입니다. 이곳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과 석등, 그리고 석불이 있습니다. 이 석불은 석굴암 본존불 양식을 계승하였는데, 불대좌와 광배까지 갖춘 완전한 모습입니다.그 모습을 살펴보면, 우선 나발은 촘촘하고 정연하며, 육계는 낮습니다. 얼굴은 사각형이면서도 부피감이 있습니다. 이마는 넓고, 코와 입은 작습니다. 목에 삼도(三道)가 뚜렷하며, 어깨는 떡 벌어졌습니다. 가슴은 두툼하지만, 허리는 잘록합니다. 두 손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고, 다리는 왼다리 위에 오른다리를 포갠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자세입니다. 석가여래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견편단(右肩偏袒)의 옷 주름은 얇고 간결하게 표현되었습니다.주형거신광배(舟形擧身..
- 불굴사 석조 입불상 불굴사 약사보전 내에 석불 한 분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 석불은 조선 영조 때 큰 홍수로 땅에 묻혀 있던 것을 송광사 노스님의 현몽으로 발굴되어 이렇게 다시 모셔졌다고 합니다. 석불은 땅 위에 있는 화강암의 바위에 받침대를 조각하고, 그 위에 세웠습니다. 크기는 전체높이가 233㎝, 어깨 폭이 75㎝, 머리높이가 53㎝입니다. 받침대는 2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랫단은 네모난 형태이며, 각 면에 안상무늬를 새겼습니다. 그리고 윗단은 둥근 형태로, 연꽃무늬를 새겼습니다. - 불굴사 석조 입불상 머리에는 굵고 둥근 육계가 솟아 있고, 별다른 장식이 없는 민머리 형태입니다. 얼굴의 입, 눈, 코, 귀는 훼손되어 큼직한 얼굴에 맞게 다시 새겼다고 하며, 굵은 목에는 삼도가 새겨져 있습니다..
- 오량리 석조여래좌상 통영에서 거제 쪽으로 신거제대교를 건너자마자 나타나는 곳이 오량리입니다. 이곳 마을에는 오량성이 있고, 마을 뒷산 자락에는 신광사라는 절에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석불이 있습니다. 오량리 석조여래좌상라고 하는 이 석불은 1950년경 이곳 절골 석불암 앞쪽 산 밑을 개간하던 농부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출토 당시 목이 부러져 있었고, 귀와 코 그리고 손가락 부분이 파손돼 있었으며, 불대좌는 중대석이 없어진 상태였습니다. 이 석불이 발견되었을 때 통영에 있는 큰 절인 안정사로 옮기려 했습니다. 그런데 인부들이 이 석불을 들어 조금 옮긴 후 잠시 쉬었다가 다시 들려고 하니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인부를 동원했지만 들리지 않아 다시 위로 옮기려고 하니 들려 지금의 자..
- 지리산 내원사에 있는 석조 비로자나불좌상(石造毘盧舍那佛坐像) 블로그 에 있는 글을 읽다가 문득 한동안 잊었던 석불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지리산 내원사에 있는 석조 비로자나불좌상이 그것입니다. 석불을 본 지가 벌써 5년이 넘었으니 그동안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이 석불은 원래 지리산 동쪽 중턱 옛 절터에 있던 것인데, 지금은 내원사로 옮겨졌습니다. 이 절터는 내원사 위쪽으로 약 6㎞쯤 떨어진 장당골 위 치밭목 능선 해발 800~900m 산중에 있다고 합니다. 이 석불이 내원사로 옮겨지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습니다.1947년 삼장면 평촌리 대밭마을에 살던 이씨 형제가 나무하러 갔다가 절터에서 우연히 이 석불을 발견하였습니다. 험준한 지형 탓에 그들은 불대좌와 광배는 그대로 두고 석불만 지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