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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 신무문
신무문(神武門)은 경복궁 북문입니다. 경복궁 집옥재(集玉齋) 앞을 지나 광임문(
이 문은 우리에겐 비교적 낯선 문입니다. 원래 문 안쪽에 태원전(太元殿), 회안전(會安殿 ), 문경전(文慶殿) 등 여러 건물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헐려 없어졌습니다. 그러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직후 청와대 경호를 위해 이곳에 (지금은 철수했지만) 군부대가 들어서면서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없는 금지구역이 되었습니다.
- 일제강점기의 신무문
신무문은 조선 세종 15년(1433년)에 세워졌습니다. 성종 6년(1475년)에 방위를 관장하는 사신(四神) 가운데 북쪽을 담당하는 현무(玄武)를 뜻하는 '신무문(神武門)'이라고 이름하였습니다. 그 후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화재로 전소되면서 함께 소실되었고, 고종 2년(1865년)에 경복궁 중건과 함께 다시 세워졌습니다.
이 문은 평상시엔 닫아두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음기(陰氣)가 궁궐을 어지럽히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하는데, 기우제를 지낼 때나 왕이 신무문 밖 활터 등으로 행차할 때에만 이 문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고종 33년(1896년) 아관파천 때 고종이 이 문을 통해 러시아대사관으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 석누조
석누조(石漏漕)의 모습입니다. 석누조는 문의 앞쪽과 뒤쪽에 각각 2개씩 있는데, 문루 바닥의 배수를 위한 구조물로 보입니다.
- 계단 난간석
문루로 올라가는 계단의 난간석입니다.
- 천장 (사진 출처: 한겨레신문)
출입구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입니다. 그 천장에는 북방을 관장하는 상상의 동물인 현무(玄武)를 그려놓았습니다.
경복궁 근정전을 중심으로 동쪽 정문인 건춘문(建春門)에는 청룡과 황룡, 서쪽 영추문(迎秋門)에는 백호(白虎), 남쪽 광화문(光化門)에는 주작(朱雀)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음양오행설에 의한 것으로 보입니다.
- 신무문
신무문은 한동안 보안과 경호의 문제로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06년 9월 29일에 일반에 개방되었는데, 신무문을 국민에게 열어줘야 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뜻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 청와대
신무문 밖으로 나가면 바로 청와대(靑瓦臺)가 마주 보입니다.
원래 이곳은 경복궁의 후원입니다. 왕 또는 문관들이 모여 글을 지으며 연회를 하였던 융문당(隆文堂)과 그리고 과거시험의 무과와 활쏘기 시합, 군사들의 교체훈련 및 사열 때 사용하였던 융무당(隆武堂)을 비롯하여 옥련정(玉蓮亭) 등의 건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경농재(慶農齋)와 그 주변 건물 앞에는 왕이 직접 농사를 지었던 내농포(內農圃)도 있었습니다. 또 그 윗부분 높은 지대, 즉 경무대(景武臺)는 왕이 친히 군사훈련을 점검하기도 하고, 연회를 베풀기도 했던 곳입니다.
일제는 이를 모두 철거하고, 이곳에 식민통치를 상징하는 총독 관저를 세웠습니다. 이후 총독 관저는 이승만 대통령 때 대통령 관저로 쓰이면서 경무대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4·19혁명 이후 청와대로 다시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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