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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흥왕릉
선도산(仙桃山)은
경주 서쪽에 있는 산입니다. 이 주변에는 고분이 여럿 있는데, 산의 서쪽에 울창한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인 고분이 하나 있습니다.
법흥왕릉이라고 전해지는
무덤입니다.
법흥왕은 지증왕의 아들입니다.
그는 중앙집권적 고대국가로서의 신라 통치체제를 완비하였고, 불교를 국교로 정하여 호국 불교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그런 왕의 무덤치곤 너무 초라합니다.
- 법흥왕릉 입구에서 바라본 벽도산
법흥왕릉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남쪽을 향해
바라보면 벽도산이 바로 마주 보입니다.
- 법흥왕릉으로 가는 산길
법흥왕릉으로 올라가는 길은 그다지 길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위가 숲으로 둘러싸여
아늑합니다.
- 법흥왕릉
이곳은 찾는 사람이 드물어 아주
호젓합니다.
무덤은 원형 봉토분으로, 소박합니다. 밑 둘레가 43m, 높이가 4.3m로,
크기가 신라왕릉 가운데
비교적 작은 편에 속하며, 봉분이나 그 주위에 아무런 장식물도 없습니다.
- 호석으로 추정되는 석재
봉분 밑부분에 호석으로 추정되는 석재가 있습니다. 봉분 속에 또 다른 것도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돌
하나만이 불거져 나와 있습니다.
- 법흥왕릉
이 무덤이 과연 법흥왕릉이 맞을까요?
법흥왕은 죽은 후에는 애공사(哀公寺) 북쪽에 묻혔습니다. 그것은 <삼국사기>에 "왕이 돌아가시니 시호를
법흥이라 하고, 애공사 북쪽 봉우리에 장사 지냈다."라고 하였고, <삼국유사>에도 "능은 애공사 북쪽에 있다."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면 애공사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삼국유사>에 태종무열왕이 죽자 애공사 동쪽에 장사를 지내고 비석을
세웠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애공사는 태종무열왕릉의 서쪽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애공사 북쪽에 법흥왕릉이 있었습니다.
애공사터를 <동경잡기(東京雜記)>에는 효현리 삼층석탑이
있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법흥왕릉의 위치는 효현리 삼층석탑의 북쪽보다는 서쪽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효현리 삼층석탑이 있는 곳 북쪽에는 신라왕릉으로 추정할 수 있는 무덤도
없습니다.
-
법흥왕릉
그렇다면 애공사가 있었던 곳이
효현리 삼층석탑 일대라는 <동경잡기>의 기록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요? 혹시
애공사터가 태종무열왕릉 바로 서쪽 마을 일대가 아닐까요?
이런
추측대로라면 이근직 교수의 주장대로 법흥왕릉은 태종무열왕릉 위쪽에는 있는 4기의 고분
가운데 맨 아래쪽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렇게 되면 옛 문헌에 나오는 법흥왕릉과 태종무열왕릉, 그리고 애공사의 위치가 서로 맞아떨어질 뿐만
아니라 무덤의 크기도 법흥왕의 위상에 걸맞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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