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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경주 동경관과 전패

sky_lover_ 2013. 10. 4. 08:26

- 경주 동경관

주 경찰서 부근에 경주 객사였던 동경관(東京館)이 있습니다. 객사는 조정의 고관이나 귀빈이 오게 되면 숙소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지금의 건물은 조선 정조 10년(1786년)에 부윤 김이용이 부임해서 새로 지은 것입니다. 1952년에 당시 경주교육청을 객사 서쪽에 신축할 때 기울어져 있던 객사 정청과 동헌을 철거하고, 서헌 15칸은 헐어서
약간 동쪽으로 옮겨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건물의 지붕 모양이 조금 특이합니다. 한쪽은 맞배지붕이고, 다른 한쪽은 팔작지붕입니다. 원래부터 이랬을까요?

- 동경관의 옛 모습
 
원래 동경관
앞면 5칸과 옆면 3칸의 단층 기와집 세 채가 이어진, 총 45칸의 규모였습니다. 그러나 건물을 옮겨 세우면서 가운데 정청인 솟을대청과 동헌이 없어져 버려 지금처럼 기형적인 지붕의 모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 동경관 현판, 조선 1882년, 74×210×5cm, 목제, 국립경주박물관

동경관 현판입니다.
현판 글씨는 1882년 가을에 경주부윤 정현석(鄭顯奭)이 썼습니다.

경주는 조선 초기에 경주부(慶州府)라 했습니다. 그러나 경주사람들은 '동경(東京)' 또는 '동도(東都)'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경주 객사에 '동경관(東京館)'이란 이름이 붙었을 것입니다.

- 전패, 조선 후기, 86.5×47×26cm, 목제, 국립경주박물관

동경관 정청에 모셔졌던 것으로 추정되는 전패(殿牌)입니다. 지금 경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인 '조선시대의 경주'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패는 조선 국왕을 상징하는 '전(殿)'자가 새겨진 나무 패입니다.
국왕을 상징하여 지방의 객사에 봉안했습니다. 지방 수령과 출장 간 관원은 정월 초하루(正朝), 동지(冬至), 탄강일(誕降日), 하례의식 등이 있을 때 다른 관원들과 함께 배례했습니다. 전패를 훔치거나 훼손한 자는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까지 처형되었으며, 그 고을은 혁파되고 수령은 파면됐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의
전패는 글자가 새겨진 나무 조각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그 당시에는 얼마나 중요한 물건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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