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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sky_lover_ 2013. 9. 30. 07:03

-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왼쪽)과 석조아미타여래입상(오른쪽)

김지성이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과 함께 조성하였습니다. 그는 상사(尙舍)와 집사부시중(執事部侍郎)을 역임한 후 67세에 벼슬을 버리고 한적한 곳에 살면서 부모와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이 불상을 조성하였습니다. 당시 이 불상은 모셔졌습니다.

광배 뒷면에 명문이 있습니다. 그 명문의 끝 부분에 성덕왕 19년(720년)에 김지성이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그가 성덕왕 18년(719년)에 어머니를 위하여 미륵보살상을 조성하고 아버지를 위하여 아미타여래상을 조성하고자 했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불상은 광배와 대좌를 갖춘 완전한 형태입니다.

떡 벌어진 가슴과 팽팽한 어깨, 당당하게 버티고 선 모습에서 위엄과 강건함이 서려 있
습니다. 법의는 통견으로, 넓고 당당한 어깨와 가슴 위로 몸에 밀착되어 있어 몸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옷 주름은 U자형으로 상체에서 부드럽게 흐르다가 다시 양쪽 다리로 각각 흘러내렸습니다.

- 세부

광배는 몸 전체를 감싸고 있는 주형의 거신광배입니다. 두광과 신광은 세 줄의 선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두광과 신광의 선과 선 사이에 다양한 꽃무늬가 있으며, 가장자리에 불꽃무늬가 있습니다.

나발의 머리 위에는 커다란 육계가 있고, 얼굴은 풍만하며, 눈·코·입이 뚜렷합니다.
오른손은 위로 올려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게 하여 엄지와 검지를 맞대었습니다.

- 세부

왼손은 아래로 늘어뜨렸으며, 손가락을 약간 구부렸습니다.

- 세부

대좌는 안상이 음각된 팔각대석과 그 위에 앙련과 복련으로 구성된 연화대좌로 되어 있습니다.

그럼 앙련과 복련을 한 번 보시죠. 그 표현한 방식이
서로 판이합니다.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에서는 서로 같은 데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런데 잘 보면 앙련이 새겨진 돌과 복련이 새겨진 돌이 서로 다른 돌입니다. 이것과 무슨 관계가 있었을까요? 아니면 그냥 단조로움을 피하려고 그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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