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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 탑비
국립중앙박물관 로비를 들어서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전시물은 월광사지 원랑선사 탑비(月光寺址 圓郞禪師 塔碑)입니다.
이 부도비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귀부 위로 비신을 세우고 이수를
얹었습니다.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비의 부재가 모두
온전합니다. 비에는 통일신라 후기 승려인
원랑선사(圓朗禪師, 816~883)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귀부
이 부도비는
원래 충북 제천 월광사터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때인 1922년에 조선총독부에서
당시 조선총독부박물관으로 옮겼습니다.
부도비가 있었던 자리에는 일제가 세운 표석이 남아 있습니다. 이
표석에는 '大正十一年朝鮮總督府博物館內移 忠淸北道 堤川郡 寒水面 松界里 月光寺圓朗禪師大寶禪光塔碑原在地(대정십일년조선총독부박물관내이 충청북도 제천군 한수면 송계리
월광사원랑선사대보선광탑비원재지)'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것은 대정 11년(1922년)에 조선총독부박물관
내로 옮겼고, 충북 제천군 한수면 송계리 월광사 원랑선사 대보선광탑비의 원래 장소라는
내용입니다.
- 귀부
앞모습
귀부는 몸통은 거북 형상인데, 머리는 용의 모습을 하였습니다.
정수리에는 뿔을 꽂은 것으로
보이는 구멍이 있습니다. 목은 짧으며, 머리를 꼿꼿이 들었습니다.
- 귀부
뒷모습
몸에 비해 발이 몹시 작습니다.
등에는 귀갑문이 있는데, 그 안에 꽃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꼬리는
돼지 꼬리와 닮았는데, 한쪽으로 재미있게 꼬여 있습니다.
- 이수
이수에는 구름에 싸여 있는 용의 모습이 사실감 있게
새겨져 있습니다. 비신에는 원랑선사의 행적이 적혀 있습니다.
원랑선사는 문성왕 18년(856년)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다 경문왕 6년(866년)에 귀국한 후 월광사에 머물렀습니다. 헌강왕 9년(883년)에 "사는 것에는 끝이 있으니 나라고 어찌 끝이
없겠느냐? 너희들은 마땅히 게으름 피우지 말고 부지런히 수행에 힘써야 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68세로 입적하였습니다.
이에
왕은 '대보광선(大寶光禪; 大寶禪光의 오기(?))'이라는
탑명을 내리고, 김영(金潁)에게 글을 짓게 하였습니다. 글씨는 구양순류의
해서체로 순몽(淳蒙)이 썼습니다. 비는 그로부터 7년 뒤인 진성여왕 4년(890년)에
세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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