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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경사 오층석탑
포항시
송라면 중산리 내연산 자락에 보경사가 있습니다.
보경사(寶鏡寺)는
진평왕 25년(603년)에 지명법사(智明法師)가 동해에 가까운 내연산(內延山) 아래의 못을 메우고
중국에 유학하고 있을 때 어떤 도인으로부터 받은
팔면보경(八面寶鏡)을 묻고 그 위에 금당을 세웠다고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보경사 천왕문을 지나면 적광전 앞마당에 오층석탑이 서 있습니다. 금당탑(金堂塔)이라고도
하는 탑입니다.
- 보경사
오층석탑
탑은 단층기단 위에 5층 탑신부로 되어 있습니다.
기단부 면석에는 면마다 모서리기둥과 1개의 가운데기둥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들 면석 가운데 일부는 새로 해 넣었고, 갑석 또한
새로 해 넣었습니다. 갑석은 아랫면에 부연을 두었고, 윗면 가운데에 3단의 각형 받침을 두어 1층 몸돌을 받치고 있습니다.
탑신부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의 돌로 되어 있습니다. 몸돌에는 모서리기둥이 새겨져 있고, 지붕돌의 층급받침은 1층과 2층에서는 4단이지만, 3층부터
5층까지는 3단으로 줄었습니다. 그리고 4층의 몸돌, 5층의 몸돌과 지붕돌은
1976년 보수 때 새로 해 넣었습니다. 상륜부에는 노반과 복발만 남아 있습니다.
- 1층 몸돌의 문비 장식
이 탑은 멀리서 얼핏 보면 그저 평범해 보이는 탑입니다. 그런데 좀 더 가까이 다가가 1층 몸돌에
새겨진 문비 장식을 보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먼저 천왕문을 지나면 마주하는 1층 몸돌의
면석입니다.
면석 가운데에 연봉자물쇠 하나와 동그란 문고리 2개가 도드라지게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이
문비 장식은 원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뚜렷했을 터이지만, 지금은 오랜 세월에 걸친 비바람으로 닳은 흔적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
그대로도 보기 좋습니다. 빛바랜 한 폭의 그림처럼 담백하면서도 푸근합니다.
- 문비 장식
적광전 쪽
1층 몸돌에 새겨진 문비 장식입니다. 앞서 본 면석의 맞은편 면석에 새겨진 문비 장식입니다.
연봉자물쇠와 동그란 문고리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만큼 세밀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마치 실물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또렷합니다. 이제껏 이것보다 더 사실적인 문비 장식을 본 적 없습니다. 3시간 가까이 차를 달려 이곳까지 온 수고가 아깝지 않습니다. 사실 보경사를 찾은 것도 바로 이 문비
장식을 보기 위해서였으니까요.
- 보경사 오층석탑
보경사 오층석탑은 언제 세워진 것일까요?
<보경사금당탑기(寶鏡寺金堂塔記)>에 의하면, "각인(覺仁) 스님이 문원(文遠) 스님과
의논하여 '절이 있는데 탑이 없을 수 없다' 하여 장인을 부르고 재물을 모아 청석(靑石)으로 오층탑을 만들어 대전(大殿) 앞에 세웠다. 처음
세운 때가 현종(顯宗) 계해(癸亥) 3월 27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기록의 앞뒤 문맥을 보아서는 글 속의 '현종'(顯宗)은 현종(玄宗 )의 오기인 듯합니다.
그렇다면 신라 성덕왕 22년(723년)이 됩니다. 그러나 탑의 양식을 볼 때 통일신라 후기를 넘어서기 어려워 보입니다. 따라서
글 속의 '현종'(顯宗)은 고려 제8대 임금 현종(顯宗)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라면 현종 14년(1023년)이 되며, 탑의
추정연대와도 대체로 일치합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지금의 탑이 청석으로 만든 탑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입니다.
따라서 성덕왕 때
청석으로 쌓은 탑이 그 뒤 언젠가 무너지자 통일신라 후기나 고려 초기 어느 때 지금의 모습으로 중창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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