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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경주 성덕왕릉

sky_lover_ 2026. 1. 2. 07:46

- 성덕왕릉

 

옛 경주역에서 울산 쪽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지금은 폐관한 한국광고영상박물관이 있습니다.

 

이 박물관 동쪽 옛 동해남부선 철로를 건너 조금 가면, 울창한 소나무 숲속에 성덕왕릉이 있습니다. 성덕왕릉은 이후 신라 왕릉의 규범이 되었고, 고려와 조선 왕릉 양식의 시원(始原)이 되었습니다.

- 귀부

 

성덕왕릉에서 약 100m 남쪽에 성덕왕릉비를 세웠던 귀부가 있습니다.

 

- 귀부

 

귀부는 머리가 없어졌고, 귀부 등 위에 있던 비도 없어졌습니다.

 

귀부는 비록 몸체만 남았지만, 그 모습은 늠름하고 당당합니다. 원래 제 모습대로라면 얼마나 멋졌을까요?

 

- 귀부

 

귀부 발가락을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귀부 앞쪽 발가락은 다섯이지만, 뒤쪽 발가락은 넷입니다. 이것은 거북이 힘차게 나갈 때 뒷발의 엄지발가락을 안으로 밀어 넣고 힘을 주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태종무열왕릉의 귀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성덕왕릉

 

성덕왕릉은 봉분이 무너지지 않게 아래쪽에 돌로 호석을 두르고, 십이지상을 배치하였으며, 그 바깥에 돌기둥을 세워 난간을 만들었습니다. 왕릉 앞쪽에는 잘 다듬은 돌로 안상이 새겨진 상석(床石)이 있습니다. 왕릉 앞에 잘 다듬어진 높은 상석이 놓이기 시작하는 것은 성덕왕릉부터입니다.

성덕왕(聖德王, 재위 702~737)은 신문왕(신라 제31대)의 둘째 아들로, 형인 효소왕(신라 제32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성덕왕은 안으로는 정치를 안정시키고 밖으로는 당나라와 외교를 활발히 하여 국력을 튼튼히 하여 삼국통일 이후 가장 평화롭고 살기 좋은 시절을 이루었습니다.

 

성덕왕이 35년간 나라를 다스리다 승하하자 백성들이 슬퍼하며 후히 장사를 지냈습니다. 능의 위치는 <삼국사기>에는 이거사(移車寺) 남쪽이라 하였고, <삼국유사>에는 동촌(東村) 남쪽, 즉 양장곡(楊長谷)이라고 하였습니다.

 

- 석인상

 

성덕왕릉 앞 양쪽에 석인상이 있습니다. 석인상은 문인석과 무인석으로 보입니다.

석인상 가운데 하나는 제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 석인상은 괘릉 문인상으로 알려진 석인상과 쌍둥이처럼 닮았습니다. 머리에 관을 쓰고, 관복을 입고, 소맷자락 속에 두 손을 모은 채 서 있습니다. 그래서 문인상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이 석인상이 무인상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 주장은 관복 속에 쥔 것이 문인들이 지니는 홀(笏)이 아니라 무인들이 쓰는 긴 칼이라는 점을 들었습니다.

 

- 부분

 

석인상 얼굴 모습입니다.

 

- 석인상 파편

 

다른 석인상은 깨어져 일부만 남아 있습니다.

 

- 돌사자상(동쪽)

 

왕릉 둘레에 네 마리 돌사자상이 동서남북을 향해 놓여 있습니다.

- 돌사자상(남쪽)

 

돌사자상은 괘릉이나 흥덕왕릉의 돌사자상과 생김새가 비슷합니다. 세월이 흘러도 서로 생김새가 비슷하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 돌사자상(북쪽)

 

다른 돌사자상은 모두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동쪽 돌사자상은 뒤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 십이지상(닭)

 

호석 받침돌 사이에 십이지상이 있습니다. 십이지상은 무사가 입는 옷을 입고 손에는 무기를 든 당당한 모습으로 앞을 바라보며 서 있습니다.

 

십이지상 대부분은 머리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유(酉, 닭)상은 조금 파손이 되었지만, 제모습을 지키고 있습니다. 완전한 모습의 신(申, 원숭이)상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옮겨졌습니다.

 

- 십이지상(말)

십이지상이 서 있는 위치가 호석 받침돌 가운데에 있는 것도 있지만, 오른편에 붙어 있는 것, 왼쪽에 가까이 있는 것 등으로 들쑥날쑥합니다. 

 

이런 점 때문에 후대에 십이지상이 옮겨진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실측해 본 결과 처음부터 제자리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호석 받침돌은 원(圓)둘레에 맞게 30등분한 위치에 세워졌고, 십이지상은 방위에 맞게 12등분이 된 방향에 배치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십이지상을 배치하려고 계획하고 무덤을 만들었다면 받침돌 개수가 12, 24, 36으로 12의 배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한 것은 한편으로는 나중에 십이지상을 만들어 세웠을 것으로 보는 설을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성덕왕릉

 

성덕왕릉은 여러모로 뛰어난 신라 왕릉입니다. 이 왕릉을 만든 시기는 경덕왕 때입니다.

 

신라는 경덕왕 때 불국사와 석굴암을 창건하고 혜공왕 때 완공하여 신라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저력을 바탕으로 경덕왕은 선왕(先王)의 무덤을 좀 더 창의적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소재지: 경북 경주시 조양동 산 8.

 

(202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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