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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내리 못안 마을
경북 경주시 외동읍의 서쪽 지역에 제내리(堤內里)가 있습니다. 제내리는 '못안' 마을의 한자식 표현입니다.
'못안'은 마석산(磨石山) 밑에 있는 분지 마을로, 마석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이곳에서 남북으로 두 갈래로 갈립니다. 옛날에는 돌매, 토상촌(吐上村), 석동(石洞)이라고 부르다가, 마을 앞의 토성계(土城谿)에 못을 막고부터 '제내(堤內)', '못안'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해방 후부터 '제내'라 하였습니다.

- 토상지
제내리 못안 마을 앞쪽에 토상지(土上池)가 있습니다.

- 석호정사
토상지 옆 길가에 석호정사(石壕精舍)가 있습니다.
석호정사는 1993년에 최계종(崔繼宗)의 후손들이 세웠습니다. 이곳 상의사(尙義祠)에서 음력 3월에 최계종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 석호정사
최계종(崔繼宗, 1570~1647)은 의병장이라는 칭호와 함께 최진립 장군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 경주 지역 임란사(壬亂史)에서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는 아버지 최신보(崔臣輔)와 어머니 평해 황씨(平海黃氏) 사이에서 최진립에 이어 네 번째로 태어난 막내아들입니다.
선조 25년(1592년)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최계종은 숙부 최봉천(崔奉天)과 형 최진립(崔震立)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웠고, 곽재우 등과 회맹하였습니다. 그는 선조 27년(1594년) 무과에 급제하여 서생포 수군첨절제사를 거쳐 남포(藍浦) 현감에 제수되었습니다.
1608년에 광해군이 즉위하자 광해군 대신 영창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던 소북의 유영경 일파가 몰락하고 대북의 정인홍과 이이첨 등이 득세하면서 인목대비 폐모론이 대두되었습니다. 광해군 10년(1618년)에 인목대비는 서궁(西宮)에 유폐(幽廢)되었습니다.
이에 반대하여 최계종은 벼슬에 나아가길 완강히 거부하다가 함경도로 유배되었습니다. 이때 평소 알고 지내던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의 도움으로 풀려나 고향 경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석호(石湖)에 자리를 잡고 여생을 보냈습니다.

- 육의당
석호정사 옆에 단아한 기와집 한 채가 있습니다. 육의당(六宜堂)입니다. 이곳은 앞쪽으로는 토상지가 있고, 뒤쪽으로는 마석산이 있습니다.

- 육의당
최계종은 광해군 11년(1619년)에 이곳에 별장으로 육의당을 짓고, 육의당을 자신의 호(號)로 삼았습니다. 그 후 그는 벼슬을 멀리하며 육의당에서 지냈습니다.
육의당은 흙과 돌로 담장을 두르고, 동남향으로 건물을 앉혔습니다. 앞쪽에는 기둥이 4개인 사주문을 두었고, 뒤쪽에는 작은 문을 내어 바깥과 출입하게 하였습니다.

- 육의당
육의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기와집입니다.
'육의(六宜)'라 편액을 한 것은 아침과 저녁, 그리고 사계절의 경치에서 그 뜻을 취하였습니다.

- 육의당
소재지: 경북 경주시 외동읍 제내리 322.

- 부부 소나무
석호정사 서쪽 담벼락 옆에 400년 된 소나무가 있습니다. 이 소나무를 부부 소나무라고 합니다.

- 부부 소나무
부부 소나무는 마치 한 몸처럼 서로 엉겨 붙어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보기 위해 외진 이곳을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 부부 소나무
최계종이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에 내려와 은거하며 지내기 위해 육의정을 지었는데, 이때 부부 소나무를 심었다고 전합니다.

- 부부 소나무
400년 세월을 서로 다정하게 품고 살아온 부부 소나무가 심상치 않습니다. 지금 이 일대에 번진 재선충병으로 주위 다른 소나무와 함께 말라 죽어가고 있습니다.

- 부부 소나무
소재지: 경북 경주시 외동읍 제내리 325.
(202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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