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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동리 은행나무
전남 강진군 병영면(兵營面)은 조선 태종 17년(1417년)에 병마절도사 마천목 장군을 시켜 백제 때부터 있던 성을 고치고 필요한 곳은 새로 쌓아 병영(兵營)을 설치한 곳입니다.
병영면의 중앙부에 성동리(城東里)가 있습니다. 자연 마을은 동성(東城), 남성(南城)이 있습니다.

- 성동리 은행나무
동성(東城) 마을 중앙부에 성동리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이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85호입니다.

- 성동리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크고 웅장합니다. 그 뿌리가 민가의 부엌, 방 밑까지 뻗어 있을 정도입니다.
나무 밑동 옆에는 큰 바위가 놓여 있어 주민들의 휴식처로 사용되었습니다.

- 성동리 은행나무
전설에 따르면, 옛날 이곳에 내려온 관리가 폭풍으로 부러진 은행나무 가지로 베개를 만들어 자다가 병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노인이 "은행나무에 제사를 지내고, 베개를 나무에 붙여주면 병이 나으리라"고 한 말을 따라 그대로 하였더니 병이 나았다고 합니다.
이후로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2월 15일 자정 무렵에 은행나무에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으며, 지금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 성동리 은행나무
병영은 네덜란드 출신 하멜 일행이 1657년부터 7년간 억류 생활을 하였던 곳입니다.
하멜은 억류 기간 밀린 월급을 받기 위해 조선에서의 생활을 기록한 <하멜보고서>를 썼습니다. 우리에게 <하멜표류기>라고 번역된 그의 저서는 폐쇄 국가인 조선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병영에서의 억류 기간 중 이 은행나무 밑의 고인돌에 걸터앉아 뼈에 사무치게 고향을 그리워하였다고 합니다.
<하멜보고서>에는 은행나무 관련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하멜보고서>는 말 그대로 월급 청구를 위한 공식 보고서이었으니 고향을 그리워하는 개인의 감정 표현 글귀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머물던 전라병영성과 은행나무는 불과 500m 남짓한 거리이고, 고향 마을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별한 모습의 나무였기에 이 은행나무에 관심이 없었을 리가 없습니다.

- 성동리 은행나무
수령: 800년. 높이: 32m. 가슴높이 둘레: 7.2m.
소재지: 전남 강진군 병영면 성동리 70.
(2025.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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