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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거수

김해 봉황동 푸조나무

sky_lover_ 2024. 5. 20. 07:30

- 봉황동 푸조나무

 

가야시대 바닷가였을 봉황동 오래된 주택지 옆에 패총유적지가 있습니다.

 

조개껍질 더미 위에 잔디를 심은 너른 언덕이 만들어져 있고, 언덕 끝자락에 노거수 푸조나무가 있습니다. 봉황동 푸조나무입니다.

 

- 봉황동 푸조나무

 

봉황동(鳳凰洞)은 김해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 지명은 1870년 김해부사로 부임한 정현석(鄭顯奭)이 이 일대가 봉황이 날개를 단 것과 같다고 하여 봉황대(鳳凰臺)라고 불렀다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이전에는 가야를 뜻하는 가라대(伽羅臺), 바다를 바라다볼 수 있다고 하여 망해대(望海臺), '출여의 낭자의 설화'에서 유래된 여의현(如意峴) 등으로 불리어 왔습니다.

 

- 봉황동 푸조나무

 

'출여의 낭자의 설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락국 겸지왕 때 황정승과 출정승은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자녀를 낳아 만약 딸, 아들이면 혼인을 시키자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황정승은 아들을 낳아 '세'라 이름하고 출정승은 딸을 낳아 '여의'라 이름을 지었는데, 출정승의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몰락한 황정승에 딸을 주기가 싫어서 여의에게 남자 옷을 입히고 아들이라 하며 키웠습니다.

 

황세와 여의는 함께 들판을 뛰놀며 자랐습니다. 여의의 외모가 점점 아름다워지자 황세는 수상하게 여겨 바위 위에서 '오줌 멀리 누기 시합'을 하자고 했습니다. 여의는 꾀를 내어 위기를 넘겼는데, 해반천에 닿아 함께 멱을 감자는 황세에게 더 감출 수 없어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친구에서 연인이 된 두 사람은 혼인을 약속했는데, 신라국의 침공이 있어 황세는 전쟁에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여의는 황세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날마다 기도하였고, 황세는 전쟁 중에 큰 공을 세우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두 연인이 기뻐할 시간도 잠시였습니다. 왕이 황세를 하늘장군이라 칭하고 공주와 혼인하도록 하였습니다. 왕의 명을 어길 수 없어 황세는 떠나고, 여의는 홀로 남아 황세를 그리워하며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습니다. 황세도 여의의 죽음을 슬퍼하다가 같은 해 세상을 떴습니다.

 

- 봉황동 푸조나무

 

봉황동 푸조나무는 몸통을 크게 수술 받았지만, 늠름하고 강건해 보입니다.

 

- 봉황동 푸조나무

 

나무는 가지를 아주 넓게 뻗었습니다.

 

- 봉황동 푸조나무

 

이 푸조나무는 황세장군과 여의낭자를 기리는 마음으로 후세 사람들이 심은 여의나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수령: 250년. 높이: 20m. 가슴높이 둘레: 4.7m.
소재지: 경남 김해시 봉황동 270-10.

 

(202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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