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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수문
김해 은하사(銀河寺)로 가는 길목에 삼방동(三芳洞)이 있습니다. 이곳 신어천(神魚川) 가에 관천재(觀川齋)가 있습니다.
관천재 대문은 활수문(活水門)입니다. 솟을삼문입니다. 이 문은 보통 잠겨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관천재 앞에 관리사(管理舍)가 있습니다. 마침 그곳에 사람이 있어 부탁해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 관천재
관천재(觀川齋)는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김해성을 지키다가 순국한 이대형(李大亨)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입니다.
- 관천재
이대형(李大亨, 1543~1592)은 자(字)는 태래(泰來), 호(號)는 관천(觀川), 본관은 재령(載寧)입니다. 선조 25년(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동래성을 점령한 뒤 김해로 쳐들어왔습니다. 그는 벼슬 없는 백성의 신분이었으나 아들에게 "나는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칠 것이니 너희들은 피난하여 선사(先祀)를 끊이지 말라"고 말한 뒤 장정 백여 명을 모집하여 4월 19일에 김해성에 들어가 송빈(宋賓), 김득기(金得器), 류식(柳湜)과 함께 싸우다가 4월 20일에 50세로 순국하였습니다.
그는 이우두(李友杜)와 이사두(李思杜) 두 아들을 두었습니다. 김해성의 함락 소식을 듣고 맏아들인 이우두는 성에 들어가 아버지의 시신을 찾던 중 적과 마주쳐 살해당했습니다. 그리고 이대형의 형인 이대윤(李大胤)의 딸인 질녀는 주박(周博)의 아들 주익창(周益昌)에게 시집갔는데 왜적을 만나 절개를 지키기 어렵게 되자 물에 뛰어들어 스스로 죽음을 택하였습니다. 이처럼 국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 집안에 살신충(殺身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림), 살신효(殺身孝: 어버이를 위해 목숨을 버림), 살신열(殺身烈: 지아비를 위해 목숨을 버림)의 삼강(三綱)이 배출되었습니다.
선조 33년(1600년) 8년간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끝에 선조는 이 사실을 알고 충, 효, 열, 이 세 가지 꽃다움을 후세에 기리기 위하여 판교동(版橋洞)이라 부르던 옛 지명 대신에 충신, 효자, 열녀가 났으니 석 '삼'(三)자와 꽃다울 '방'(芳)자로 '삼방'(三芳)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습니다.
- 모절사
관천재 뒤쪽에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습니다. 모절사(慕節祠)입니다.
- 위패
모절사 안에 모셔진 위패입니다. 이대형과 그의 맏아들 이두우의 위패로 보입니다.
- 관천재 배롱나무
모절사 앞마당 한쪽에 오래된 배롱나무가 있습니다.
이 배롱나무는 고려 말 모은(茅隱) 이오(李午)의 증손 이포(李咆)가 함안 고려동에서 김해로 솔가(率家)하면서 집안의 상징인 배롱나무 한 뿌리를 들고 가려 했으나 반출이 허락되지 않자 도포 자락에 몰래 넣어와 심은 것이라고 전합니다.
- 관천재 배롱나무
배롱나무는 백일홍나무라고도 합니다.
배롱나무꽃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10일이 지나면 지지만, 다른 꽃이 또 피고 해서 100일간 핍니다. 그렇게 100~200년이 되면 원래 나무는 죽고 그 속에서 새로 어린나무가 올라와서 다시 100~200년을 이어간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관천재 배롱나무 나이가 500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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