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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영천 영천향교

sky_lover_ 2021. 11. 16. 07:46

- 유래루

 

경북 영천시 교촌동(校村洞) 마현산(馬峴山) 비탈에 영천향교가 있습니다. 

 

영천향교가 있는 곳은 북쪽에는 마현산이 병풍처럼 버티고 있고, 남쪽에는 금호강(琴湖江)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곳은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에 해당합니다. 이곳 지명이 교촌동인 것은 이곳에 향교가 있기 때문입니다.

 

- 배치도

 

향교는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해 배향(配享)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조선 시대에 세워졌습니다.

 

영천향교는 건물 배치가 전학후묘(前學後廟)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대성전, 동무, 서무, 전사청(典祀廳), 내삼문(內三門), 명륜당, 동재, 서재, 외삼문(外三門)인 유래루(牖來樓), 삼일재(三一齋) 등의 건물이 있습니다.

 

- 유래루에서 바라본 영천 시내

 

유래루에서 바라본 영천 시내입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특별한 느낌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습니다.

 

영천향교의 건립 연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성종 12년(1481년)에 신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군 북쪽 2리에 학교가 있다는 기록으로 보아 고려말이나 조선 초에 처음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유래루

 

명륜당 쪽에서 바라본 유래루입니다. 명종 원년(1546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건물은 전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의 중층 누각입니다.

 

유래루(牖來樓)의 '유'(牖)는 들창이라는 뜻입니다. 들창을 통하여 어두운 방 안에 한 줄기 햇살이 들어오니 어두운 머리를 밝게 해주는, 즉 깨우침을 뜻합니다. 그러니 유래루(牖來樓)는 "공부하러 오는 자는 막지 않고, 공부하기 싫어 가는 자들은 잡지 않는다(來者勿拒 往者勿追)"에서 따온 이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 회화나무

 

명륜당 앞마당에 오래된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향교를 대표하는 나무는 은행나무가 많은데, 이곳은 회화나무입니다. 이 회화나무는 수령이 400년이 되었고, 나무 높이는 13m, 가슴높이 둘레는 3.9m입니다.

 

예로부터 회화나무는 모든 나무 가운데 으뜸으로 치는 신목(神木) 대접을 받았습니다. 집안에 심으면 가문이 번창하고 큰 학자나 인물이 나며, 잡귀신이 감히 범접을 못 하고 좋은 기운이 모여든다고 믿었습니다. 회화나무를 회화목(懷花木), 회나무, 홰나무, 괴화(槐花)나무, 괴목(槐木), 괴수(槐樹) 등으로 불렀습니다.

 

- 동재

 

명륜당 앞뜰에 동재(東齋)와...

 

- 서재

 

서재(西齋)가 있습니다.

 

동재와 서재는 학생들의 기숙사입니다. 동재에는 양반들의 자제가 기숙했고, 서재에는 평민들의 자제가 기숙했습니다. 건물은 각각 전면 4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 명륜당

 

명륜당(明倫堂)은 성균관이나 지방의 향교에 부설된 강학당으로, 강학 영역의 중심 건물입니다. 명륜당이란 이름은 인간사회의 윤리를 밝힌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 명륜당

 

명륜당은 전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명륜당은 명종 원년(1546년)에 군수 이중량(李仲樑)이 세웠는데, 선조 3년(1570년)에 소실되었습니다. 광해군 2년(1610년)에 중건하였으며, 정조 6년(1782년)에 화재로 일부 건물이 소실되어 2년 뒤인 1784년에 군수 심진(沈鎭)이 재차 중건하였습니다.

 

- 내삼문

 

내삼문은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건물은 전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 동무

 

대성전 앞뜰에 동무(東廡)와...

 

- 서무

 

서무(西廡)가 있습니다.

 

동무와 서무는 전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 대성전

 

대성전은 전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이곳에 5성(五聖)과 송조 2현(宋朝二賢)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대성전은 조선 세종 17년(1435년)에 건립되었고, 중종 8년(1513년)에 군수였던 김흠조(金欽祖)가 중수하였습니다. 임진왜란 때 사인(士人) 이현남(李顯男)이 대성전에 봉안되어 있던 5성의 위패를 자양면 기룡산(騎龍山)의 성혈암(聖穴巖)으로 옮겨 난을 피하였다가 다시 제자리에 모셨습니다. 광해군 14년(1622년)에 군수 황효의(黃孝儀)가 중건하였습니다.

 

- 대성전

 

대성전은 고준(高峻)한 창호와 광창 등과 같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건축적 특징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조선 세종 때에 중국 명(明)나라 목수가 건축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중국인 목수에 의한 중국 사원 건축의 특징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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